내 사고, 요양원 시절22 요양원에서 나오던 날의 기억 20여 년 전 요맘때 일이다. 10년 넘게 지내던 #요양원을 나와 드디어 사회로 복귀하게 된다.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훨씬 더 컸다. 요양원에 들어가게 했던 내 질병은 다소 나아졌지만 대학 졸업 직후 천금보다 소중하던 10여 년을 투병만 하며 보낸 탓에 아무런 경력·기술·자격을 지니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겨우 월세방 하나 얻어 노가다를 할 요량이었고 이마저도 몸이 안 버텨주면 당장 굶어죽는 수밖에 없었다. 나가지 말고 계속 안에 있으라는 권유를 원생들은 많이들 했다. 이미 중년이 시작된 나이에 아무런 준비 없이 사회생활 시작했다가 물질적, 정신적 상처만 입고 사라진 원생들을 하도 많이 보아서인지 좀 더 머물라는 것이었다. 어차피 그 요양원은 무허가에 diy 비슷한 시스템이었기에 내 돈은 거의 들지 않.. 2023. 4. 30. 바다는 봐서 뭐 할 건데, 쌍년아!!! 그녀는 #바다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선천적 백혈병을 고친다고 집안 재산 다 해 먹고도 실패한 후, 결국 부모 죽고 난 뒤에는 형제들에게서 버림받고 당시 내가 있던 요양원으로 흘러온 그녀는 입만 열면 바다를 이야기했다. 바다만 보면 아픈 몸도 나을 거란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하도 반복하는 통에 다른 원생들이 드디어 돈을 추렴하기 시작한다. 다들 가족들과도 왕래가 거의 없고 몸이 안 좋아 알바조차 제대로 못 했지만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던 이 여자 소원이나 들어주자며 뜻을 모은 것이다. 자가용을 가진 자는 물론 없었지만 차를 렌트하고 면허 가진 누군가가 운전을 하며 다른 한 명이 부축을 해주면 몸이 꽤나 안 좋지만 이 여자를 바다까지 데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태클을 걸고 나섰다. 모두 비슷한.. 2023. 4. 16. 그 사고가 없었다면 난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 #사고가 있기 전까진 정말 오만했다. 아무리 어려운 시험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6개월 안에 다 붙을 것 같았고 아무리 대단한 회사도 현란한 화술을 이용해 반드시 들어갈 자신이 있었다. 물론 모두가 망상이었다. 조금의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감만 가득한 게 망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다 제대로 뭐 하나 시도도 못한 채, 운명의 그날을 맞이했고 그 후 지금껏 기가 안 살아난다. 종종 가던 만화방에서 주말 오후 시간을 보내다가 아무 생각 없이 갔던 그곳에서 그런 일을 맞을 줄 꿈에도 몰랐다. 그런 일이 생길 가능성은 로또보다 적은데.... 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그날의 화사했던 날씨가 어제 본 듯 생생하다. 그 후 지금껏 감옥에 살듯 살았다. 죽지 못해 산다는 말 그대로 꾸역꾸역 의무감만으로 산 것.. 2022. 8. 23. 여자 때리는 이 형에 대한 고마움에 눈물까지 나네 간만에 #통장을 정리하다 소액의 돈이 꾸준히 입금 돼 온 걸 발견했다. 2만 원, 3만 원, 1만 5천 원 같은 극 소액이 종종 들어온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내 계좌에 돈을 넣을 사람은 없는데 입금자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다. 너무 궁금해서 나에게 돈을 보낼만한 사람 전부에게 연락을 해보았지만 모두가 아니란다. 이런 소액은 상대를 우롱한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기에 일반인은 보낼 리 만무하다. 이 점에 착안하여 한 때 나와 연을 맺었지만 지금은 남남인 다소 특이한(?)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결국 오래 전 나와 같이 요양원에 있었던 형이 타인의 통장을 통해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이 형은 신용불량자라 통장도 없다. 지방 어느 공장에서 일을 하는데 몇 년 전, 술집 아가씨를 심하게 때리는 걸 내가 말렸더니.. 2022. 8. 13. 책으로 꼭 쓰고 싶지만 누구도 관심 안 가질 이야기들 "명주야~~~ 우리 중에 제도권으로 들어간 건 너 하나다. 책도 썼던데 그 재주로 우리들 얘기를 글로 옮겨서 발표해 주라. 세상 모두가 우리를 욕하고 손가락질하지만 우리도 나름 사정이 있었고 사연도 깊다는 걸 너라도 꼭 좀 세상에 전해줘!!!" 간만에 아는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주 오랜 전, 무허가 #요양원에 있을 때 알게 된 형인데 몇 년 전에 나온 내 책을 보고 연락을 했다고 한다. 이 형은 머리가 참 좋았는데 고시공부를 하다 정신분열이 생겼다. 문제는 외동아들이 정신병자라는 걸 그 부모들이 부인하는 통에 제때 치료를 못 받았고 그래서 병이 심해졌다는 점이다. 나중에라도 약물치료를 시작하고 조금 나아지자 결혼과 취업을 했지만 바쁜 생활 속에 약 복용을 중단하자 다시금 재발을 했다. 결국 이혼과 해.. 2022. 8. 5. 에어컨 가동을 못 하게 하는 그때의 기억 #더위가 한 풀 꺾였다. 더위를 타는 사람들은 무슨 도그사운드냐고 하겠지만 이번 주 목요일이 정점이었고 그 후로 미세하지만 약해지고 있다. 올여름도 에어컨 없이 버텼다. 에어컨 바람을 오래 쐬면 기침을 심하게 하는 체질이지만 2~3분 정도는 가능하기에 여름을 즐기는 나도 올해는 에어컨이 간절했다. 그럼에도 10여 년 전의 기억은 여전히 에어컨 가동을 망설이게 했다. 당시 모 요양원(입소는 까다로웠지만 퇴소는 자유로웠다)에 들어가 있던 나는 3명이 겨우 버틸만한 방에서 나를 제외한 5명과 함께 여름을 보냈다. 에어컨은 당연히 없었고 선풍기 한 대가 전부였다. 모두들 장애 등 상황이 극히 안 좋았는데 나 역시 몸이 안 좋고 별달리 갈 곳이 없기에 그곳에 있어야만 했다. 낮에는 동료들의 체온을 피하려고 근처 .. 2022. 8. 5. 친구들이 뺏어먹은 내 짜파게티 그래도 화 안 나는 이유 밤 10시부터 3시간 가량 자다 너무 배가 고파서 깼다. 천관녀를 찾아간 김유신의 말처럼 나도 모르게 부엌으로 향하더니 #짜파게티를 끓였다. 그것도 2개를. 얼추 완성되었기에 식탁에 앉아 몇 젓가락 먹고 있는데 친구가 잠이 안 온다며 방에서 나온다. 밤에 뭐 먹으면 안 된다고 하더니 그래도 내가 좀 덜어주자 잘 먹는다. 다른 친구도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깼다며 나오더니 우리를 흉본다. 하지만 역시나 일부를 덜어주자 못이기는 척 왕성히 먹는다. 너는 못 먹어서 어쩌냐고 하기에 3개 끓여서 1/2가량 먹었으니 됐다고 했다. 이 말을 믿는지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다. 단무지가 맛있다며 어디서 났냐고 묻는다. 며칠 전에 내가 냉장고 맨 밑 칸에 통 채 넣으며 꺼내 먹으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요즘 너무 잘 잊는다. 요.. 2022. 7. 28. 요양원에서 먹던 복숭아 맛이 안 나네 아주 오래 전 #요양원에 있던 이맘 때. 갑자기 복숭아가 생각났다. 얼마 하지도 않으니 당장 사다 먹으면 될 텐데 당시 나에게 그럴 돈도 없었다. 어렵게 다른 환자에게 천 원을 꿔서 과일가게로 갔다. 당시에도 여러 개 씩만 팔았는데 사정사정하여 한 개를 겨우 샀다. 시냇물에 담가 놨다 먹으니 기막혔다. 아까 장에서 복숭아를 샀다. 가장 비싼 걸 샀는데 요양원에서 먹던 맛이 안 난다. 원효 대사 해골바가지 이야기가 생각나네. 2022. 7. 26. 다단계에 빠진 개차반 같은 이 지인을 저버리지 못하는 이유 #돌침대가 친구 집에 배달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비쌀 텐데 왜 샀냐고는 하지만 말투에 기쁨이 가득한 채로 친구가 전화를 한다. 당신이 이뻐서 사준 게 결코 아니라는 말을 바로 내뱉으니 도망치듯 전화를 끊는다. 다단계 하는 지인의 부탁으로 산 거다. 이 지인을 멀리하라는 전화를 이미 다른 사람들로부터 많이 받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전과도 많고 개차반 같은 인생을 산 사람이지만 나에겐 고맙다. 20여 년 전 에어컨도 없는 그 움막에서 내가 시름시름 앓기만 할 때, 없는 돈에 차가운 바나나 우유를 사서 아무것도 못 먹는 내 입에 넣어줬다. 어느 날엔 라면에 계란까지 넣어서 끓여줬는데 훔쳐 온 게 아닐까 의심스러웠지만 그냥 먹기만 했다. 만나면 한없이 날 우울하고 슬프게 만들지만 그래도 이 사람에겐 정이.. 2022. 7. 11. 백혈병으로 죽은 어떤 누님에 대한 제사를 지내다 오늘은 제삿날이다. 퇴근길에 제사상에 올릴 #육개장, 젤리, 커피를 사 왔다. 가족이 없는 나지만 요양원에서 맺어진 인연들을 위해 종종 이런다. 오늘의 제사는 어떤 누님을 위한 것이다. 나보다 10살가량 연상이었고 백혈병이 재발하여 투병하다가 가족에게서도 버림받고 결국 요양원으로 들어온다. 딱 한번, 이미 이혼한 전 남편이 사춘기 애들을 데리고 왔었는데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완쾌하길 바란다는 형식적인 말을 했다. 나이 들어 재발한 백혈병은 치료가 대단히 어렵고 비용이 장난 아니다. 이 때문에 이 누님을 버리고 다른 여자랑 재혼했지만 누님은 내색 하나 없이 고맙다고 했다. 그때 이 누님이 짓던 미소가 잊히지 않는다. 무슨 의미였을까? 중고딩이던 애.. 2022. 6. 19.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