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바다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선천적 백혈병을 고친다고 집안 재산 다 해 먹고도 실패한 후, 결국 부모 죽고 난 뒤에는 형제들에게서 버림받고 당시 내가 있던 요양원으로 흘러온 그녀는 입만 열면 바다를 이야기했다.
바다만 보면 아픈 몸도 나을 거란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하도 반복하는 통에 다른 원생들이 드디어 돈을 추렴하기 시작한다.
다들 가족들과도 왕래가 거의 없고 몸이 안 좋아 알바조차 제대로 못 했지만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던 이 여자 소원이나 들어주자며 뜻을 모은 것이다.
자가용을 가진 자는 물론 없었지만 차를 렌트하고 면허 가진 누군가가 운전을 하며 다른 한 명이 부축을 해주면 몸이 꽤나 안 좋지만 이 여자를 바다까지 데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태클을 걸고 나섰다.
모두 비슷한 처지인데 왜 이 여자 편의만 봐주냐며 들고 일어선 것이다.
앞으로 또 누군가가 비슷한 소원을 이야기하면 그것도 들어줄 거냐고 모두에게 물은 뒤, 정부 보조금도 거의 못 받는 우리 처지에 이렇게 낭비(?) 하다가 정작 돈이 필요할 때 쓰지 못해서 이 요양원마저 폐쇄되면 어찌할 거냐는 엄포도 놓았던 것으로 기억난다.
실제로 그 요양원이 사라지면 원생 다수는 거지 신세가 될 처지였기에 내 이야긴 다수의 가슴을 파고들었고 여자를 바다에 데려가 주잔 계획은 흐지부지되고 만다.
오늘 내일 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던 그녀는 나에게 원망 서린 눈길을 보냈고 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마냥 한 마디를 외쳤다
"바다는 봐서 뭐 할 건데, 이 쌍년아!!!"
그녀에 대한 개인적 감정은 전혀 없었지만 불의의 사고로 청춘과 미래 모두를 잃어버린 그때 내 신세에 대한 저주와 한이 이런 발언을 할 정도의 괴물로 날 변모시켰나 보다.
얼마 뒤 그녀는 잠을 자다 혼수상태에 빠져 병원에 실려갔고 곧 죽고 만다.
어제 간만에 동네 뒷산에 갔다.
야밤에 랜턴 들고 올라가 늘 도는 코스를 걷는데 저 멀리 무당이 접신을 하기 위해 만든 임시제단이 보인다.
남겨둔 과일과 음식 중엔 전술한 그녀가 좋아하던 술떡이 있다.
이 떡을 보는 순간 수십 전 그녀의 한 서린 눈빛이 다시금 떠올랐다.
저승에서도 날 엄청 원망하고 있겠지?
난 외모만이 아니라 내면 역시 흉악한 기형일지도 모른다.
야수는 죽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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