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요맘때 일이다.
10년 넘게 지내던 #요양원을 나와 드디어 사회로 복귀하게 된다.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훨씬 더 컸다.
요양원에 들어가게 했던 내 질병은 다소 나아졌지만 대학 졸업 직후 천금보다 소중하던 10여 년을 투병만 하며 보낸 탓에 아무런 경력·기술·자격을 지니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겨우 월세방 하나 얻어 노가다를 할 요량이었고 이마저도 몸이 안 버텨주면 당장 굶어죽는 수밖에 없었다.
나가지 말고 계속 안에 있으라는 권유를 원생들은 많이들 했다.
이미 중년이 시작된 나이에 아무런 준비 없이 사회생활 시작했다가 물질적, 정신적 상처만 입고 사라진 원생들을 하도 많이 보아서인지 좀 더 머물라는 것이었다.
어차피 그 요양원은 무허가에 diy 비슷한 시스템이었기에 내 돈은 거의 들지 않았고 종종 인근 농사일 등을 도와주고 조금씩 얻는 농산물을 다 같이 나눠먹으며 지내는 구조였기에 굳이 꼭 나갈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난 감지했다.
이렇게 계속 머물다간 더더욱 사회복귀는 힘들어지고 결국 이 안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을 거란 걸.
실제로 사회복귀를 아예 시도 안 하고 안주安住를 택했던 원생들 다수는 나중엔 이젠 아무리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을 만치 완전히 망한 인생이라는 사실에 좌절하여 산에 올라가 목을 매는 방법을 택하곤 했다.
오전 10시경, 어렵게 알바를 하여 모은 돈으로 부른 용달차가 요양원 마당에 도달했고 내 책상과 책 몇 권, 그리고 냄비 등 가재도구를 싣기 시작했다.
친했던 원생 몇이 나와 도와주며 힘들면 바로 돌아오란 말을 하기도 했고 일부는 본인이 먹지 않고 모아둔 초코파이 등 과자를 주며 잘 살라는 말도 했다.
금방 짐을 다 싣자 용달차 주인이 그런다.
떠나자고.
조수석에 올라탄 내 눈에 백미러를 통해 원생들과 요양원의 마지막 모습이 들어왔다.
세상이 너무 무서워 당장 내리고 싶었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끝장이란 생각에 혀까지 깨물었다.
1~2시간 만에 나는 인근 도시로 이동했고 바로 그날 방을 구하여 이사를 끝냈다.
정리를 다 마치니 밤 11시 무렵이었고 24시 해장국집에서 식사를 했다.
대학 졸업 이후 거의 처음으로 온 식당이라 많이 낯설었지만 애써 티를 안 내려 노력했던 게 생각난다.
그 후 나는 어렵게 들어간 노가다 판에서 짤리는 등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어찌어찌 버티며 살아남았고 결국 노무사가 되어 오늘날까지 목숨을 이어오고 있다.
요즘도 힘들 때면 요양원에서 나오던 그날의 봄 햇살을 생각한다.
대단히 따사로웠지만 내가 당시 느끼던 공포심을 오히려 증폭시켰던 것 같다.
사회성이 제로가 되어 우체국도 혼자 못 가던 그때, 계속 복귀를 주저했다면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복귀 후 반년 가까이, 돌아오라는 연락을 꾸준히 하던 원생이 있었다.
나중엔 내가 전화를 안 받자 문자폭탄까지 남기곤 했던 이 친구는 유난히 나를 아껴줬고 무엇보다 외로움을 많이 탔기에 그랬을 것이다.
몇 번이나 이 친구의 권유가 너무 달콤해서 당장 모든 걸 버린 채 돌아가고 싶었지만 죽을 때 죽더라도 사회에서 죽어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며 겨우 이겨냈다.
이 친구는 내가 노무사가 된 직후 좋은 일자리를 구해주며 나오라고 할 때까지도 그 안에 있었다.
그리곤 나와서 내가 마련해 준 거처에 지내며 이 일자리에 취업했지만 3달 만에 자살을 한다.
사회에 도저히 적응하지 못하겠고 그렇다고 돌아가자니 나에게 너무 미안하기에 어쩔 수 없다는 유서를 남긴 채.
어찌 보면 내가 죽인 것이다.
내가 일자리만 구해주지 않았다면 바로 돌아가서 생은 이어갔을 텐데....
노무사이자 행정사로 살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만 보고 성공적인 복귀라 말하는 자들이 있다.
난 그들에게 꼭 묻고 싶다.
이런 굴곡을 겪으며 깊이 새겨진 내 마음의 스크래치는 안 보이냐고.
세상에 공짜는 없다.
자수성가한 자의 성격이 나빠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변태나 성격파탄자에 가까워진 날 이렇게라도 변명한다면 이해해 줄 자가 있을까?
따뜻한 봄날, 요양원에서 나오기로 했던 내 결정이 나에게 플러스와 마이너스 중 어떤 영향을 더 끼쳤는지 죽는 그날까지 나는 알 수 없을 것이다.
'내 사고, 요양원 시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다는 봐서 뭐 할 건데, 쌍년아!!! (0) | 2023.04.16 |
---|---|
그 사고가 없었다면 난 어떤 삶을 살았을까? (0) | 2022.08.23 |
여자 때리는 이 형에 대한 고마움에 눈물까지 나네 (0) | 2022.08.13 |
책으로 꼭 쓰고 싶지만 누구도 관심 안 가질 이야기들 (2) | 2022.08.05 |
에어컨 가동을 못 하게 하는 그때의 기억 (0) | 2022.08.0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