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절: 절개나 지조를 지키지 않고 배반함(고려대한국어대사전)
1. 그가 나는 너무 좋았다. 특히 조국의 미래와 민중을 걱정하는 그의 모습에선 아우라까지 느껴졌다. 부모님 등 주변 사람들은 내 좋은 학벌과 머리를 썩이지 말고 로스쿨이나 유학을 가라고 성화였지만 그와 조금이라도 떨어지고 싶지 않고, 무엇보다 개인적 영달을 꾀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일절 응하지 않았다. 이렇게 10년, 그와 함께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나의 그에 대한 마음이 사랑임을 그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기에 조금도 힘든 줄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결혼을 발표했다. 상대는 로스쿨 나온 변호사로서 부잣집 딸내미. 우리 조직의 법적인 기반을 다지는데 도움이 될 거라는 말로 이 여자와의 혼인을 그는 당연시 했지만 그에게 처가에서 외제차부터 사준 걸 봐도 재력도 감안한 모양이다. 세속적인 걸 혐오한다고 그렇게 강조해 놓고 이건 뭔가? 이 사람만 바라보며 그 좋은 선자리와 남자들을 거부하고 일체의 경력쌓기조차 거부했던 내 10년은 어디서 보상받나?
2. 그녀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 민초들과 함께 하겠다던 그날의 맹세를 나는 어길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대의를 위해 개인적 욕심을 버리더라도 그녀마저 나로 인해 불행해지는 꼴은 절대 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로스쿨을 나와 돈 잘 버는 변호사가 되면 그녀에게도 더 큰 행복을 주고 우리 조직을 위해서도 한층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무엇보다 잘난 사위를 선호한다는 그녀 부모님의 눈에 들기 위해서라고 이 수밖에 없었다. 배신이나 변절이란 말을 들으면서도 로스쿨 3년간 나는 그녀만 생각했다. 변시에 합격하고 그녀와 결혼할 수 있다면 아무리 심한 비판도 다 감수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자랑스런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그녀에게 청혼한 그날, 그녀는 거절했다. 단순히 안 받아 준 것만이 아니라 대단히 경멸하는 눈빛으로 변절자와는 말도 섞고 싶지 않으니 자기 눈앞에 절대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고도 했다. 내가 뭘 잘못했나? 난 단지 그녀를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었을 뿐인데.
이념이 인터넷이 아닌 오프에서는 별 위력을 가지는 못하는 요즘이지만 사상과 소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꼬이는 인생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다.
왜 삶은 이다지도 복잡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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