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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노무사로서 고려대 후배에게 내가 해준 것

by 강명주 노무사 2023. 3. 13.

 

몇 년 전부터 연을 맺고 있는 #거래처는 계약직 풀을 이용해 정규직을 확보하는 인력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즉, 일단 계약직으로 채용하고 지켜보다가 괜찮으면 계약기간 종료될 즘 정규직화 시켜주는 것이다.

 

작년 초에 새로 계약직을 뽑으며 면접관으로 참석했던 내 눈에 어떤 지원자가 들어왔다.

 

유난히 하얀 얼굴이 인상 깊었는데 나랑 동일하게 고려대 출신이다.

 

이때는 별생각 없이 면접만 보았고 얼마 뒤 알아보니 합격했단다.

 

그런데 작년 여름께 이 회사를 방문했다가 우연히 이 직원을 또 보았고 지나가는 말로 잘 지내는지 상사에게 묻자 다 좋은데 너무 어둡단다.

 

말도 잘 안 하고 시키는 일만 하며 웃지도 않으니 영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동료들이 많이들 보인단다.

 

다행히 능력은 좋은지 영어 번역 같은 일도 곧잘 하지만 우울한 성격 탓에 회식자리에서도 말이 나올 정도란다.

 

굳이 내가 이런 거까지 신경 쓸 이유는 전혀 없지만 같은 대학 후배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얼마 뒤 또 이 회사를 방문하고 커피나 한잔하자며 따로 자리를 마련한 뒤 직장생활은 어떤지 물었다.

 

괜찮다기에 전술한 상사의 말을 에둘러 전하며 계속 그렇게 우울하게 굴면 정규직 전환되기 힘들 거란 말을 꺼냈다.

 

날 즉각 쏘아보며 시키는 일만 잘 하면 됐지 왜 표정까지 남에게 맞춰줘야 하냐며 거센 반발을 보인다.

 

당시 내가 입고 간 복장은 빨간 넥타이에 할리 데이비슨 가죽잠바 그리고 워커였다.

 

다 늙은 내가 좋아서 이러고 다니는 거 아니라고 했다.

 

그냥 양복 입고 다니면 가뜩이나 노안이기에 더더욱 늙어 보이고 그러면 세상이 내 실체와는 무관하게 거부할 소지가 크기에 밝고 활달한 이미지를 줌으로써 먹고살려고 이런다고 했다.

 

당신이 계속 그렇게 고집부리다 정규직 안 되고 쫓겨나도 나랑 아무 상관 없지만 대학 후배이기에 왠지 걱정돼서 하는 소리며 선택은 당신의 몫이라는 말도 했다.

 

인생 자체가 감정노동이기에 장차관들도 대통령에게 잘 보이려 마음에도 없는 미소 띠는 게 세상 이치라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먼저 난 일어났다.

 

그 뒤론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아까 이 친구에게서 전화 연락이 왔다.

 

내 이름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여 연락처를 알아낸 모양이던데 얼마 전 정규직 전환자가 발표되었는데 본인 이름도 있었단다.

 

나와의 작년 대화 이후, 여기저기 알아보니 내 말대로 전문직들도 먹고살기 위해 억지웃음을 짓는 세상이기에 본인도 여기 맞춰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당장 실행했단다.

 

그런데 처음엔 무지 어색하던 느낌이 이런 변화를 동료들이 좋게 보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점점 사라지더니 어느 순간부터 별 이유 없어도 미소를 띠는 게 아주 자연스러워지며 그 자체로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단다.

 

나도 이와 동일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노무사 초창기에 강의 시장 진출을 위해 혼자 거울 보고 연습할 때, 가장 주안점을 둔 건 만면의 미소였다.

 

나 역시 전술한 직원처럼 억지로 웃는 걸 무지 싫어하는 스타일이었기에 늘 경직된 표정이 트레이드 마크였고 이를 시정하지 않으면 아무리 강의 내용이 좋아도 거부감을 클 거라는 유튜브 유명 강사의 말이 진리 같아 보여 표정 바꾸는 연습부터 한 것이다.

 

그 결과, 나도 이 직원과 유사하게 신기한 경험을 한다.

 

모든 상황이 동일함에도 웃기만 했는데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이에 대해 그 후 여러 책도 찾아보았는데 우리 뇌는 얼굴이 웃음을 띠면 무조건 이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 받아들이고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을 바로 분비하는 바보 같은 메커니즘을 지녔기에 발생하는 현상이란다.

 

이게 진짜 옳은 설명인진 모르겠지만 여튼 웃으면 다소라도 기분이 좋아지는 게 사실 같고 이를 나와 전술한 직원 모두 경험한 모양이다.

 

이 직원은 이 경험 이후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도 더욱 웃음을 많이 보였고 이는 한층 주변의 평가를 좋게 했으며 웃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서라도 꼭 정규직 만들어 줘야겠다는 말까지 상사에게 들었단다.

 

고대 선배로서 후배에게 뭐라도 해준 것 같아 기쁘다고 하자 비싼 술을 사고 싶단다.

 

그건 됐고 나중에 혹시 당신도 고대 후배 되는 사람을 만나면 법과 도리에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신경 좀 써주라고 했다.

 

그러면 난 비싼 술 마신 것보다 더 기쁠 거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통화를 마쳤다.

 

대학 선배로서 이 정도는 별문제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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