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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사(업무,강의,소회 등)

남의 자식 눈에 피눈물 나게 한 임원과 이를 막지 못한 나

by 강명주 노무사 2023. 1. 11.

"명주야, 너 왜 그래?"

"뭐가?"

"그냥 남들처럼 징계할 사안이 아니라는 데 사인하고 회사가 예약해 둔 식당 다 같이 가서 맛있는 거 먹고 즐기면 그뿐인데 왜 너 혼자 난리야?"

"내가 보기엔 이번 결정이 옳지 않으니까"

"그건 너 생각이고 나머지 사람 모두 그 직원 잘못 없다고 하잖아?“

“야, 그 직원의 아버지가 이 회사 임원이 아니었어도 그런 판단 나왔을까? 피해자가 저토록 구체적으로 진술을 하고 있고 상대가 임원아들임을 알면서도 문제제기할 정도면 워가 있어도 있는 거 같은데?”

“막말로 그 직원이 부하직원을 좀 괴롭혔다 치자.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닌데 그게 그토록 잘못이냐?”

“직장 내 괴롭힘 금지조항 위반인데? 게다가 피해자는 그 일로 인해 정신과도 다닐 정돈데?”

“왜 이리 빡빡해? 세상사 어떻게 지킬 거 다 지키고 살아? 그리고 이런 일로 정신과 갈 정도면 그 멘탈이 문제인 거 아냐? 그냥 이번 일만 네가 눈감아주면 앞으로 이 회사 거래처랑 자회사에도 널 소개해줄 거라 너에게도 무지 이익일 거야”

“피해자 이야기 보니 고딩 때 ​ 부모 다 죽고 무지 힘들게 살아오다가 여기까지 왔던데 만약 네 아들이 그렇게 혼자 살다가 이런 억울한 일 당해도 너 지금 하는 말 그래도 할 수 있어?”

“난 그런 거 몰라. 네가 자꾸 이러면 널 소개한 내 입장만 난처해지기에 너랑 연 끊을 수밖에 없고 이 회사, 아니 이 회사의 주변 회사들까지 너에 대한 안 좋은 소문나서 너 업무에 아주 큰 차질 있을 거라는 것만 알아둬”

“협박까지 하네. 맘대로 해라. 이런 회사와 너 같은 인간은 나도 상종하기 싫다”

오늘 참석한 모 회사 #징계위원회.

상사가 부하직원을 심하게 괴롭혔다는 게 문제가 되었는데 이 상사의 가문이 아주 빵빵하다.

아버지는 전술한 대로 이 회사 임원이고 일가친척 중엔 유명 정치인도 있으면 판검사랑 의사 형제도 가졌다.

그래선지 징계위원회에 출석하는 태도부터 거만함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피해자는 전혀 아닌 환경에서 자라던 사람이고 그래도 대단히 성실했다고 한다.

다만 이 상사의 개인적 부탁을 몇 번 거부하자 그 후로 무진장 괴롭혔다는데 불행히도 녹음 등 별다른 증거는 없다.

하지만 워낙 자세히 진술을 하기에 신뢰도가 무척 높다고 느껴졌고 가해자인 상사의 반박은 대단히 추상적이었다.

난 이런 점들을 종합하여 징계를 해야 한다고 보았지만 날 제외한 위원들 모두는 이에 반대했다.

괴롭혔다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게 이들의 근거다.

예전에 친했던 친구가 소개해준 회사이고 이 친구 역시 외부인 자격으로 이 위원회에 참석했기에 중간에 우리끼리만 이야기를 나누다가 전술한 대화까지 하게 된다.

결국 나는 징계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은 채, 다수가 지지하는 판단에 따라 이 상사에겐 그 어떤 조치도 내려지지 않았다.

끝나고 나오는데 회사사람은 몰론 외부인 자격으로 참석했던 위원들 그 누구도 나랑 눈도 안 마주친다.

피해 직원이 마지막 발언에서 그랬다.

자신은 오늘 이 징계위원회에서 아무런 조치가 안 내려진다면 앞으로 남은 인생 동안 절대 이 일을 잊지 않고 다시는 착하고 성실하게 살지 않을 거라 맹세한다고.

멍멍이 소리에 불과하다고 위원들 모두 여기는 눈치던데 과연 이 직원의 맹세가 본인과 이 사회에 어떤 악영형을 끼칠지 나는 무지 걱정스러웠다.

내 능력의 한계에 봉착할 때면 술만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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