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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고, 요양원 시절

에어컨 가동을 못 하게 하는 그때의 기억

by 강명주 노무사 2022. 8. 5.

#더위가 한 풀 꺾였다.

더위를 타는 사람들은 무슨 도그사운드냐고 하겠지만 이번 주 목요일이 정점이었고 그 후로 미세하지만 약해지고 있다. 

올여름도 에어컨 없이 버텼다.

에어컨 바람을 오래 쐬면 기침을 심하게 하는 체질이지만 2~3분 정도는 가능하기에 여름을 즐기는 나도 올해는 에어컨이 간절했다.

그럼에도 10여 년 전의 기억은 여전히 에어컨 가동을 망설이게 했다.

당시 모 요양원(입소는 까다로웠지만 퇴소는 자유로웠다)에 들어가 있던 나는 3명이 겨우 버틸만한 방에서 나를 제외한 5명과 함께 여름을 보냈다.

에어컨은 당연히 없었고 선풍기 한 대가 전부였다.

모두들 장애 등 상황이 극히 안 좋았는데 나 역시 몸이 안 좋고 별달리 갈 곳이 없기에 그곳에 있어야만 했다.

낮에는 동료들의 체온을 피하려고 근처 산에서 시간을 보냈고 새벽에만 기어들어가 쪽잠을 자는 삶의 반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이 찾아왔고 안락한 생활을 보장해 줄 테니 같이 가자고 했다. 지옥 같은 삶을 살던 나에겐 더 없는 유혹이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공짜가 없기에 쾌적한 삶 대신에 나는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굴욕마저 감수해야 한다는 조건이 불어 있었다.

결국 나는 이 제안을 거부했고 인간의 체온이 이다지도 높게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여름 내내 체감하며 마침내 견뎌냈다.

이렇게 몇 년이 흘렀고 이곳에 안주하다가 그대로 인생이 끝난 사람들을 생각하며 퇴소를 결정한 나를 당시 친하던 형이 만류했다. 말로는 세상에 나가서 자립할 능력이 나에게 없다고 했지만 내심으로는 자신과 가장 친하던 내가 떠나는 것이 싫어서 그랬을 것이다.

버스정류장까지 따라 나오며 이제라도 마음을 돌려서 돌아가면 안 되겠냐고 권유하던 그 형의 목소리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무턱대고 나와 봤자 노숙자 취급만 받을게 뻔하고 세상이 너무 무서웠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야 한다는 생각에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 후 그 형은 복용하던 약을 제대로 안 먹다가 내성이 생겼고 2년 후쯤 저세상에 갔다고 한다.

내가 거기 있을 때, 소원이 뭔지 말하며 시간을 보낸 적이 있는데 그 형은 하늘에서 에어컨이 뚝 떨어져서 하루 종일 그 바람을 쐬는 것이라 했다. 에어컨 전기값이 없지 않느냐며 내가 면박을 주던 것도 기억난다.

이 형을 생각하면 죽을 때까지 나를 위해서는 에어컨을 틀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이 요양원에서 보낸 기간은 남은 인생에서 플러스뿐만 아니라 얼마든지 마이너스로도 작용할 수 있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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