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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군상,인간관계,대화법

질이 좋은(?)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거리감과 벽

by 강명주 노무사 2020. 12. 1.

“강 노무사, 질이 좀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게 어때?”​

지난주에 출소한 친구가 찾아왔기에 반갑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요즘 교도소는 어떤지 열심히 떠들던데 이를 지나가던 지인이 봤나보다.​

전술한 톡을 이 지인이 좀 전에 보냈는데 날 생각해주는 마음은 고맙다.​

하지만 이 사람 견해대로 ‘질이 좋은‘ 사람들을 가까이하면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 언젠가는 꼭 벽이 느껴진다.​

질이 좋다는 말의 의미는 여러 가지겠지만 정상적인 가정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라고 제도권 교육을 충실히 받은 상태에서 사회가 선호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자를 통상은 지칭하는 듯하다.​

이렇게 본다면 재소자, 전과자, 정신병자. 알콜중독자, 고아, 신용불량자, 도박중독자 등 내가 주로 애정을 주고받는 상대들은 기피의 대상일 뿐 가까이할 이유가 전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느껴지는 정이 ‘질 좋은‘ 사람들에게선 안 느껴진다.​

날 좋게 보고 여러 모로 도와준 전문직 종사자가 있었다.​

나도 절대 날로 먹지 않고 금전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 우리 집의 더러운 꼴을 이 사람에게 오픈해야만 하는 상황이 닥쳤는데 영 이해를 못하는 눈치였다.​

자신이 살아온 삶과 너무 달라서인지 공자왈맹자왈만 하더니 결국 나를 거의 쓰레기 취급하는 뉘앙스를 풍겼다.​

이런 경험을 ‘질이 좋은’ 사람들에게서 아주 많이 했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대다수도 당연히 살았을 거라는 착각을 지능이 높은 자도 수두룩이 하는 현실이 참 안타깝다.​

전혀 다른 삶도 있다는 걸 일일이 설명하면 이해해주는 자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 과정이 주는 모멸감과 자괴감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내가 강간을 했어도 끝까지 쉴드 쳐주겠다던 ‘질이 좋은’ 사람이 쓰레기 가족으로부터 날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내 행동을 듣더니 바로 연을 끊은 적이 있다.​

전후사정을 설명했지만 이 사람은 자신의 기존 관념이 무너지는 예외를 절대 용납하고 싶지 않았나보다.​

‘질이 낮은’ 자들은 나를 이래저래 귀찮게만 할 소지가 크지만 인간적 소통은 느끼게 해준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해서인지 최소한 벽에 대고 이야기한다는 기분은 안 든다.​

난 영원히 ‘질이 좋은’ 자들과는 가까이 못할 것이다.​

이게 내 숙명이겠지만 무협지에 나오는 사파邪派도 정파正派와 늘 평행선일수밖에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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