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성.
한때 내가 가장 싫어하던 단어이다. 가뜩이나 #언청이(구순구개열)로 태어나 여러 불이익을 경험한 나에게 이 단어는 지나친 구속으로만 느껴졌다.
그렇다고 큰 불법을 저지른 적은 없다. 담배꽁초나 쓰레기 혹은 소주병을 아무 곳에나 버리고 무단횡단을 하는 정도가 내가 범한 불법의 전부이다.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있더라도 법만 어기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도덕과 법은 그 지향하는 바가 다르고 법만 다 지키고 사는 것도 어렵기에 나도 어느 정도는 동의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다. 엄청난 도덕군자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도덕은 지키고 살아야 한다고 바뀐 것이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나를 지키기 위함이다.
간통죄가 없어진 후, 쾌재를 부른 모 회사 사장을 안다. 이 사장은 남자가 봐도 멋진 외모에 좋은 스펙과 뛰어난 외국어 구사능력까지 갖추었기에 여자들에게 인기가 참 좋다. 기혼이지만 거래처 등에서 만난 여자들이 추파를 자주 던지고 거기에 적당히 호응하는 것을 인생의 큰 즐거움으로 여기는 눈치다.
언젠간 같이 술을 마시며 다소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마음에 그렇게 바람피우면 아내에게 미안하지 않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마치 세상모르는 어린애의 질문을 받은 듯 마구 웃더니 그 정도는 알면서도 속아주는 게 인생사 아니냐고 답한다. 자신 같은 멋진 남편을 곁에 두고 싶으면 적당히 참아줘야 한다는 뉘앙스가 강하게 풍겼다.
이 사장이 얼마 전 큰 낭패에 빠졌다. 같이 회식했던 부하직원으로부터 준강간으로 고소를 당한 것이다. 평소 친하게 지냈고 자신의 야한 농담이나 가벼운 스킨십도 잘 받아주기에 이 여자 역시 자기를 좋아한다고 생각을 했단다. 그래서 회식 후 만취한 이 여직원을 모텔로 끌고 가서 관계를 가졌는데 아침이 되자 아무 생각이 안 난다며 바로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다.
모텔 cctv에 비틀거리며 몸도 가누지 못하는 이 여직원을 사장이 업다시피 해서 방에 데려가는 장면이 찍혔고 여직원의 동의를 받았다는 증거는 전혀 없기에 유죄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상당히 농후한 상태다.
다른 여자들은 아무리 이렇게 해도 아무도 신고 안 했는데 왜 이 여직원은 신고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발언을 이 사장이 나에게 하기에 정말 많이 놀랐다. 술 취한 여자를 함부로 건드리는 것이 범죄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 텐데 대학원까지 나온 이 사장이 이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 갔다. 아마도 그 동안 자신의 매력만 믿고 바람을 피워도 아내조차 아무 말 안하고 여러 여자를 마음껏 건드려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기에 이런 이상한 마인드가 온 몸에 밴듯하다.
이 일이 있고 초반에 제대로 사과라고 했으면 모르는데 그 여직원이 자기를 너무 좋아해서 앙탈을 부리는 차원에서 신고한 거라며 조금만 자기가 신경 써주면 본인도 동의해서 관계한 거라고 말을 바꿀 거라며 이 사장은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이런 태도에 더 화가 났는지 여직원은 가장 엄하게 처벌해 달라는 탄원서까지 검찰에 제출했다.
영국의 문호인 체스터튼의 추리소설 <브라운 신부>에 보면 탐정인 브라운 신부의 친구이자 파트너로 플램보라는 사람이 나온다. 이 사람은 전직 도둑인데 브라운 신부가 갱생시키고 자신의 파트너 역할을 하게했다. 이 플래보는 자신이 의로운 도둑임을 한때 무척이나 자랑했는데 이 사람을 갱생시키며 브라운 신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좋은 일은 꾸준히 계속해서 해도 아무 문제없지만 나쁜 일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하면 할수록 나빠질 수밖에 없다. 당신이 아무리 의적이라 지금은 자부하더라도 도둑질을 계속하는 한, 언젠가는 흉악범이 되어 모든 사람의 지탄을 받게 된다. 그러니 이제 도둑질은 그만두고 나와 같이 합법적인 일을 하자"
전술한 사장이 적당한 선에서 자신을 규율 했다면 이번처럼 엄청난 범죄에 연루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그 동안 많이 보았기에 나 역시 도덕적인 행동을 하려고, 아니 최소한 비도덕적인 행동은 피하려도 많이 노력 중이다. 특히 나같이 혼자 사는 사람은 이래라 저래라 해줄 사람이 주위에 아무도 없기에 한 번 폭주하기 시작하면 정말 대책이 없어진다.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도덕은 정말 중요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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