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백수시절, 친구가 보증을 잘못 섰다가 쫄딱 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친했던 녀석이라 바로 달려가 보니 법원에서 사람들이 나와 세간살이에 빨간 딱지를 진짜 붙이고 있었다.
당시 나는 가난뱅이에 불과했고 법에도 깡통이라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뭐라도 해주고 싶었는데 그 친구의 어린 자식들이 눈에 보인다.
친구와 제수씨는 법원 공무원들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기에 내가 이 애들을 분식집에 데려가 이것저것 사주며 내 딴엔 마음을 달래주려 노력했던 게 기억난다.
아버지 사업이 망하며 결혼자금도 다 날아갔던 어떤 처녀를 안다.
그래도 어찌어찌 어렵게 결혼은 했는데 혼인 후 처음 맞이한 신랑의 생일에 해줄 게 너무 없었단다.
이 처녀는 고민 끝에 뜨개질을 시작했고 스웨터를 하나 직접 짜서 선물한다.
전문가가 아니기에 다소 하자가 있었지만 신랑은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까지 귀한 날만 입는 등 신주단지 모시듯 한다.
언젠가도 한 번 썼지만 나는 늘 형이하학은 형이상학보다 열등하다고 여겨왔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보다는 관념 속 무언가가 더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요즘 들어 건강이 상한 채로 몇 달간 지내다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간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어렵게 알아낸 자가치료에 의해 증상이 사라지자 세상 자체가 완전히 달리 보이며 날아갈 듯 기쁘다.
전술한 친구에 대한 내 우정은 여전했지만 내가 자기 자식들에게 해준 걸 안 이후 이 친구는 날 더 각별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아무런 물질 없어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고 흔하게 말하지만 그 마음을 담을 소소한 물건이라도 준비된다면 그 사랑은 엄청 증폭될 것이다.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은 크림과 빵의 관계 아닐까.
어느 하나만 먹으면 금방 질릴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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