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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사(업무,강의,소회 등)

더없이 오묘한 내 돈벌이와 그 철학

by 강명주 노무사 2023. 6. 9.

- 모 회사 회의에 참석했다. 공정함을 높이고 다양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하여 나 같은 외부 #전문가도 부른 것이다. 교수, 다른 자격사 등도 있던데 한 가지 사항이 자꾸 맘에 걸린다. 잠시 운을 떼 봤지만 대다수가 별 관심을 안 갖고 무엇보다 회사 관계자들도 시큰둥한 반응이다. 정해진 시간이 지나고 회의 참석 수당을 지급받은 뒤 돌아왔다. 하지만 내 마음에 걸렸던 그 점이 자꾸 생각난다. 할 일도 없고 심심하기에 이에 대한 의견서를 하나 썼다. a4 용지 4페이지 분량이라 시간도 얼마 안 걸렸다. 이를 이 회사 아주 높은 사람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별문제도 아닌 걸 괜한 오지랖 부리는 거라면 미안하고 이로 인해 더 이상 날 안 불러도 감수하겠다는 말과 함께. 며칠 뒤 전술한 회의를 주관했던 직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보낸 의견서 탓에 회사가 발칵 뒤집혔다며 사장이 관련 쟁점에 대한 추가 회의를 꼭 하라고 지시했으니 거기 참석해달라는 전화다. 여전히 심심하던 차에 또 가서 의견서 내용을 재차 이야기하자 이번엔 무지 열심히 경청하더니 관련 대응책을 반드시 마련하겠다며 고맙다는 말을 한다. 이번에도 회의 참석 수당 받고 돌아왔는데 이 대응책 관련 컨설팅을 해달라는 전화가 또 왔다. 서류 작업 귀찮아서 싫다고 하자 페이를 무지 많이 부른다. 무엇보다 내 의견서가 이 모든 사단의 시작이라 기호지세騎虎之勢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수락했고 서류 몇 장 더 만들어 주자 내 통장엔 엄청 많은 돈이 입금되었다.

- 어떤 회사에서 큰 컨설팅을 한다며 공개 입찰에 부쳤다. 평소 내가 관심을 갖고 열심히 연구하던 주제라 꼭 따내고 싶었다. 나 같은 베짱이가 1달간 매일 6시간만 자며 무지 열심히 제안서를 만들었다. 무려 120페이지다. 이걸 제출하고 회사 관계자의 반응을 대충 보자 이 정도 퀄리티의 제안서는 들어오지 않았다며 십중팔구 내가 따낼 거란다. 미리 돼지갈비에 소주로 자축도 했건만 결과 발표일엔 내가 아닌 다른 자격자에게 일이 주어졌다. 전술한 관계자에게 항의 아닌 항의를 하자 심사 단계에선 거의 나로 결정되었는데 막판에 사장이 뒤집었단다. 컨설팅에 임하는 자세와 철학 같은 대단히 추상적인 이유를 댔지만 아마도 사장이 대단히 존경하는 교수의 로비 탓에 이렇게 된 듯하며 자신은 이 말 한 적 없으니 못 들은 걸로 하란다. 승패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는 말처럼 자격사 업에선 자주 발생하는 케이스지만 속은 무지 쓰리다.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이 건만 제대로 해냈다면 입소문이 나서 유사한 일이 엄청 많이 들어왔을 텐데.

전술한 두 가지 상반되는 경험들을 자꾸 하다 보니 돈벌이에 대해 너무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팔자에 순응한다고나 할까.

게다가 하루 20시간씩 일만 하며 돈은 엄청 벌었지만 심근경색으로 사무실에서 죽은 모 자격사 소식을 듣고 나니 돈벌이에 대한 기본 철학 자체가 바뀌었다.

이 자격사는 돈 쓸 시간조차 없어서 결국 그 가족만 좋은 일 시키다 가버린 셈이다.

적당히 벌고 적당히 즐기고 적당히 사유하고.

이렇게 살란다.

떼돈 벌어봐야 꽃뱀들만 찾아올 게 뻔한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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