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근 나갔다가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에 가파른 계단을 만났다.
막 올라가려는데 내 바로 뒤의 어떤 여자가 좀 도와달란다.
한 손엔 어린애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바퀴 달린 가방을 끌고 가던 여자다.
가방을 들어주려 하자, 그건 됐으니 애를 안아 달란다.
보통 이런 경우, 애를 본인이 처리하던데 가방에 뭐가 들었는지 몰라도 신주단지인 양 취급한다.
여자는 가방을 들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고 애를 안고 나도 따라가자니 계단이 너무 가파르다.
혹시 넘어지면 애까지 다칠 것 같아 여기 서 있을 테니 가방 놓고 내려와서 데려가라 했다.
이 여자를 기다리고 있자니 애가 내 수염을 만지기 시작한다.
요 며칠 안 깎다 보니 산적같이 수북한 게 재미났나 보다.
언젠가도 이곳에 썼지만 애들은 일반적으로 날 좋아한다.
내 특유의 반사회성과 무질서함이 애들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자아와 궁합이 맞는 듯하다.
이 애도 그래선지 아주 즐겁게 수염을 가지고 놀았고 자기 볼까지 내 얼굴에 비비기 시작한다.
애들 피부가 좋다는 건 익히 알았지만 이토록 밀착해서 느끼는 건 거의 처음이다.
정말 기분이 좋다.
자기 애를 그토록 사람들이 낳고 싶어 하는 이유 중엔 이것도 분명히 있지 않을까.
잠시 뒤 애 엄마가 내려오더니 고맙다는 말 한마디 남긴 채 애를 데려간다.
나도 애를 낳고 참 싶었는데 그노무 구순구개열이란 유전병 탓에....
따사로운 봄날 햇살과 대비되어 더 슬펐던 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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