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고등어를 굽다가 기름이 주방 바닥에 살짝 튀었다.
겨우 한 토막이었고 밀가루를 입힌 상태였기에 걸레질 한 번이면 충분했으나 식사 준비를 중단하고 바닥 전체에 퐁퐁까지 뿌려대며 생쇼를 했다.
비린내로 인해 요양원 시절을 떠올리는 게 죽기보다 싫었나 보다.
그 시절 나는 질리도록 고등어를 먹었다.
거의 무료에 가까웠기에 제대로 된 식사를 기대할 수 없었고 이런 상태에서 그나마 돈을 추렴하여 종종 사다 먹던 게 고등어다.
우리는 일부러 소금을 아주 많이 뿌려달라고 생선장사에게 요구를 했다.
고등어 양에 비해 먹을 사람은 너무 많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지만 한두 점이라도 집어먹으면 입맛이 확 살아났다.
그땐 비린내도 거의 신경 안 썼다.
조금이라도 더 먹으려 손가락으로 집어 먹기도 했고 기름이 옷에 흥건히 묻어도 비누는 사용하지도 않은 채, 물만으로 대충 헹궈서 또 입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그 시절의 시그니처 같은 냄새는 바로 생선 비린내다.
얼마 전, 모 사장의 필순 잔치에 갔었다.
맨손으로 지금의 회사를 만든 입지전적 인물이지만 평소엔 교수나 작가처럼 늘 아주 온화하고 부드러운 게 큰 매력이었다.
이런 사장이 이 날만은 체면 생각 안하고 다수 앞에서 불같이 화를 냈다.
젊은 날을 같이 보낸 친구가 힘들었던 시절, 같이 일자리 구하러 갔다가 허탕치고 반쯤 쉰 떡을 싸게 사서 나눠먹으며 허기를 달랜 이야기를 하자 갑자기 이랬다.
악의가 있는 말은 절대 아니었지만 이 사장은 그 기억을 영원히 잊고 싶었나 보다.
내가 생선을 2~3년 한 번 정도만 먹는 걸 보면 요양원 시절이 나에겐 비슷한 위치를 차지하는 듯하다.
생선백반 정도 사 먹을 돈은 충분히 벌고, 직접 하더라도 이미 손질 다 되어있는 걸 소량만 요리하기에 비린내랄 것도 없지만 오늘 같은 행동을 보면 도저히 부정 못 하겠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때를 그리워한다.
일종의 양가감정인데, 절대 난 성공하거나 행복하면 안 되고 그냥 쓰레기로 살다가 혼자 쓸쓸히 죽어야 마땅하다는 생각도 무의식에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 지금보다는 그때가 왠지 훨씬 더 편했다.
어느 한 시기를 그리워만 한다면 그때처럼 살면 된다.
반대로 정말 잊고 싶다면 조금도 그때를 연상할 행동을 하지 않고 살면 된다.
난 이도 저도 아니기에 이곳에 요양원 이야기를 자주 쓰면서도 오늘처럼 모순되는 행동도 한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대견스럽게 여기면서도 동시에 증오하고 역겨워하는 것과 같은 맥락일까.
요양원 시절로 인한 이 묘한 감정을 이해해 줄 사람을 기대하는 건 또 다른 미친 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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