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봐? 구경났어? 빨리들 안 꺼져?"
"고마워요"
"아뇨. 내가 고맙네요"
저녁 먹고 산책을 나섰다.
#봄바람을 한껏 마시고 돌아오는데 맞은편에 어떤 젊은 여자가 보인다.
하체가 대단히 불편한지 지팡이에 의지해 걷는 모습이 영 불안하다.
깁스한 게 안 보이는 것으로 보나 무슨 큰 병이나 타고난 장애 같다.
애서 모른 척하며 지나치려던 찰나, 이 여자가 갑자기 넘어진다.
지팡이 끝의 고무가 길바닥에 미끄러진 탓 같은데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다들 놀란 눈치다.
일부가 도와주려고 하자 이 여자는 혼자 일어설 수 있다며 대단히 짜증을 낸다.
자신의 이런 처지 자체에 화가 나고 이를 구경하는 듯한 사람들의 시선도 너무 싫은가 보다.
구순구개열(언청이)이 심할 때 나도 마찬가지였다.
쯔쯔 혀까지 차며 구경하는 자들이 적지 않기에 나도 모르게 전술한 말을 호통치듯 했다.
눈까지 부라리며 특유의 인상을 쓰자 다들 갈 길을 서두르며 재빨리 흩어진다.
다 일어선 여자가 고맙다는데 진짜로 내가 더 고마웠다.
범죄자들이 공갈협박할 때의 쾌감이 이런 것일까?
꼭 이익이 안 생기더라도 그 자체로 무진장 찌릿하기에 난 그저 즐거웠다.
기우뚱기우뚱 자신의 길을 다시금 출발한 여자에게 신이 무한한 자비를 베풀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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