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모토 세이초의 <모래그릇>이란 작품이 있다.
일본의 사회파 추리소설인데 그 내용이 매우 슬프다.
은퇴한 전직 순경이 무참히 살해되는데 범인은 20대 초반의 전도유망한 예술가이다.
이 예술가가 아주 어릴 때(2차 대전 이전), 아버지와 둘이 떠돌이 생활을 했고 이 아버지는 문둥병 환자였다.
이들을 당시 순경이었던 피해자가 발견하고 나름 도우려하지만 수용소로 가는 걸 꺼린 아들은 도망치고 2차 대전으로 대다수 관공서의 서류들이 멸실된 틈을 이용하여 자신을 입양해준 집안의 친자인양 서류 등을 조작하게 된다.
하지만 이 전직 순경만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자신이 문둥이의 아들이란 과거를 은폐하기 위하여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 것이다.
내 인생에 이 소설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구순구개열(언청이)이란 내 약점(?)을 원래는 나도 숨기곤 했지만 이 작품을 읽고 나서는 선자리에서 혹은 그에 앞서 미리 공개하곤 한다.
당연히 할 일을 한 것뿐인데 뭘 그리 생색내느냐고 할 수 있지만 당사자가 돼보며 그런 말 쉽게 못한다.
내 스펙만 보고는 어서 선자리 나오라거나 주선한다던 사람들이 이 정보를 듣고 나선 더 없이 차갑게 변하는 경우를 수 없이 경험했기에 하는 말이다.
얼마 전 모임에서 알게 된 어떤 나이든 여자 분은 취미가 선자리 주선이다.
꽤나 부유하신 분인데 아무 조건 없이 싱글들을 이어주고 그들이 잘사는 걸 보는 게 즐거워서 이런다고 한다.
내 학력, 직업 그리고 독신사실을 알게 되더니 당분간 주말은 무조건 비워두라고 명령처럼 말한다. 선을 계속 보게 해줄 테니 의무적으로 그래야 한단다.
고마운 마음에 당연히 그러겠다고 했는데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구순구개열을 안 밝혔다.
톡으로 이를 알리자 알아보고 연락한다더니 함흥차사다.
못 참고 어제 연락을 하니 미안하지만 그건 자기도 감당이 안 된단다.
좋다 말았기에 기분은 더 상한다.
게다가 스펙에서 나에게 현저히 밀리고 지금 백수인 이 모임의 내 또래 독신남에겐 계속 선자리를 주선하고 있다.
이거까지 알고 나니 더욱 그렇다.
전술한 작품에서 그 아들이 순경을 죽인 심정이 나이가 갈수록 공감이 간다.
겉으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세상은 특히 유전되는 약점을 가진 사람에겐 절대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내가 저 아들처럼 내 약점을 감추기 위해 누군가를 죽인다면 세상은 나만 욕하겠지?
그 어떤 판검사도 일말의 동정조차 표하지 않겠지?
앞으로도 내 약점은 계속 공개하겠지만 그에 비례하여 커질 분노를 어찌 감당하면 좋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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