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팔자가 그거 밖에 안 되나 보네"
"너 이 새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내 아내가 암에 걸려서 6달 밖에 못 산다고~~~"
"평소에 당신 걸핏하면 운명 운운하며 그냥 받아들이라고 하지 않았어? 지난번에 내가 언청이라 괴롭다고 할 때도 팔자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고 했을 텐데.... 작년 망년회에서 박 전무 애가 군대에서 다쳐서 장애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말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잖아? 그걸 그대로 난 따라했을 뿐인데 뭐가 잘못됐나?"
어제 모임에서 나랑 어떤 사람과의 대화.
#운명론을 조자룡 헌 창 쓰듯 하는 자들이 종종 있다.
쿨해 보일 수도 있기에 이러나 본데 안 좋은 상황에 처한 상대에겐 엄청 아프게 들리기도 한다.
특히 상황이 좋은 자들이 운명 운운하는 건 자신은 신의 축복을 받은 인간이라는 말로도 들려서 굉장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게 보통이다.
전술한 대화에서 나에게 욕을 한 자가 바로 여기에 속한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유복하게만 자랐고 학력, 직업 모두 최고인 상태에서 누구나 부러워할 결혼을 한 뒤, 지금까지 별 어려움 없이 살았던 이 사람은 운명론을 즐겨 거론했다.
그게 나처럼 안 좋은 팔자인 자의 기분을 얼마나 상하게 하는지 아마 몰랐을 것이다.
그러다 이번에 본인의 아내가 암에 걸렸다는 말을 하며 은근히 위로를 바라기에 난 이 사람의 운명론을 그대로 답습했다.
내가 죽을죄를 지었나?
안 좋은 팔자인 자들이 그래도 현실을 감수하라고 만들어진 게 운명론의 본래 취지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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