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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사(업무,강의,소회 등)

무료 강의하며 느끼는 점 (다른 노무사님들께 대한 죄송함)

by 강명주 노무사 2020. 9. 21.

무료 강의하며 느끼는 점.​

1. 공유지의 비극​
“수강 태도 나쁘거나 예의 없는 수강생은 쫓아낼 수 있는 권한을 제게 주세요” ​
내가 무료 강의하며 유일하게 내거는 조건이다. 이 조건 없이 강의를 해보니 분위기가 진짜 개판 5분전이었다. 자신들에게 도움은 되지만 얼마든지 무료로 들을 수 있다고 여겨서인지 강의하는 내 면전에서 큰 소리로 통화를 하는 등 말로 형언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누구나 공유지를 쓰게끔 하면 남들 생각 안하고 이기심만 내세우기에 결국 공유지는 황폐해지기만 한다는 유명한 이론은 여기서도 유용한 듯했다. 조금만 예의 없어도 바로 내보내자 오히려 내 강의로 도움 받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조건 없는 사랑은 애를 망치기도 할 것이다.​

2. 다양한 협박​
한밤중에도 종종 이상한 전화를 받는다. 아마도 내 강의를 들은 사람들이 법적인 조치를 취하는 통에 궁지에 몰린 사용자들이 하는 전화 같다. 이들은 나에게 왜 쓸데없는 말 하고 다니느냐고 항의를 하는데 더 나아가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협박죄는 다들 알다시피 구체적인 해악의 고지가 필수인데 이 정도까지 안가는 협박도 많이 경험했다. 지금 법체계로는 나 같은 사람은 거의 보호를 못 받는다. 밤길 조심하라는 말은 하도 들어서 이젠 반갑기까지 한데 내가 비정상이겠지?​

3. 감사의 전화​
교통비 정도만 받고 내가 아는 모든 걸 알려주는데 임금 등을 받고나서 전화라도 한 통하는 사람은 솔직히 거의 없다. 어차피 기대도 안했지만 조금 섭섭한 건 사실이었다.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혹시 내가 성의표시라도 하라는 말을 할까봐 이러는 눈치였다. 난 그런 사람 아닌데. 그냥 말로라고 고맙다고 하면 그것만으로도 생의 이유를 찾을 수 있겠는데. 충분히 이해하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4. 무료로 하는 이유​
원래는 1인당 만원이라도 받으려 했다. 내 강의를 통해 노동법상 각종 권리를 찾을 수 있다면 이 정도는 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는 이마저 포기했다. 정말 상황이 안 좋은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어떤 아줌마를 알았는데 못 받은 임금이 꽤 됐다. 남편은 죽고 혼자 애들을 키우는 입장이라 꼭 받아야 했기에 내 강의에 나오시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하지만 이 아줌마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나중에 연락해보니 버스비가 없어서 못 나온 거였다. 당시 몸이 아파서 집에서 쉬고 있었는데 애들 라면이라도 먹이고 나니 정말 돈이 한 푼도 없었단다. 빌리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과거 요양원에 있으며 나 또한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이 말 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너무 잘 안다. 그 후론 이런 사람들에겐 내가 교통비를 그냥 준다. 나도 가난하지만 이 정도는 할 수 있다.​

5. 변한 세상​
누가 그랬다. 30년 전만해도 이런 강의하면 잡혀갔을 지도 모른다고. 당시는 권리 찾으려는 근로자들에게도 마구 빨갱이라는 누명을 씌우는 사회 분위기가 농후했기에 빈말은 아닐 것이다. 민주화된 세상의 덕을 나는 보고 있는 거다.​

6. 환희​
여튼 내 강의를 통해 못 받은 임금을 받거나 사장의 사과를 들음으로써 마음이 풀린 사람들이 그 덕에 새롭게 살아갈 힘을 얻는 걸 보면 난 환희를 느낀다. 그래서 이 짓을 계속하는 걸 거다.​

7. 미안함​
원래는 노무사들에게 수수료 주고 처리할 일인데 내가 강의를 통해 아주 자세히 알려주니 자체적으로 처리하는 거다. 그래서 주변 노무사님들에겐 그저 송구할 뿐이다. 이분들도 땅 파서 장사하시지는 않을 텐데. 노무사 모임에 거의 안 나가는 이유도 이거다. 이 죄송함은 영구히 나를 괴롭힐 것 같다.​

8. 내세​
내세울 거 하나 없는 삶이지만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염라대왕이 조금은 측은히 여겨서 내세에는 좀 정상적으로 태어나게 해주려나? 이 기대는 왜 날 떠나지 않는 걸까? ​ ​ ​ ​ ​ ​ ​ ​ ​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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