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사님은 왜 인생을 포기했어요?”
가장 여건이 안 좋은 근로자는 누구일까?
요즘 고용보험 관련해 시끄러운 캐디 등 특수 고용직?, 근로자성의 인정 여부가 핵심인 플랫폼 노동자?, 최저임금법의 예외에 해당할 수 있는 장애인 근로자?
이들도 물론 상황이 안 좋겠지만 내가 보기엔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고 사회를 극도로 겁내는 근로자들이 정답 같다.
이런 자들이 흔하진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이러는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이들에게 원래 필요한 건 취업이 아니라 치료이다.
정신적 상처부터 고쳐야 하는데 그럴 여건이 안 되니 취업전선에 뛰어들며 설사 채용이 되어도 오래 견디지 못하고 사직과 재취업을 반복한다.
당연히 경제적 여건이 안 좋을 수밖에 없는데 짧은 근속기간 탓에 임금을 제대로 못 받고 나오는 경우가 대단히 흔하다.
짧으면 1~2달, 길어야 5~6개월 일을 하다 결국 사직한 뒤 그 동안 번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동굴 같은 월세방에서 상처를 혀로 핥으며 버티는 이들에게 이 체불임금이 목숨줄이란 건 누구나 예측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조기에 그만둔 것에 대한 괘씸함 탓에 사장들은 지불을 최대한 늦추며 이를 시정해 줘야 할 노동청 감독관들은 큰 사건이 아니기에 제대로 신경을 써주지 못 하는 케이스가 잦다.
이때 힘을 써줄 사람이 나 같은 노무사인데 #체불금액이 얼마 안 되니 수수료를 많이 받기 곤란하기에 사건 수임 자체를 거부하는 자들이 대다수이다.
결국 이런 이유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하여 월세도 못 내고 길바닥으로 쫓겨나는 이들을 몇 번 접한 뒤로 나는 이 사건들을 열심히 처리하고 있다.
나라도 나서서 사장들에게 전화나 내용증명을 보내고 정 안 되면 감독관 찾아가서 빠른 사건 처리를 부탁하면 임금이 제법 빨리 들어온다.
고맙다며 10프로 내지 20프로를 주려 하지만 어차피 체불금액이 적기에 나에게까지 떼 주고 나면 이들이 동굴 속에서 지낼 기간이 너무 단축된다.
그래서 보통은 밥이나 술 한 잔으로 대신을 한다.
혹자는 시간과 노력만 낭비한다며 날 미쳤다고 보는데 너무 세상이 무섭고 마음이 아파서 나 역시 모든 걸 포기해 봤기에 이들을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다.
이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건 시간이다.
취업과 사직을 반복하며 세월이 지나다 보면 과거의 상처를 잊거나 이겨낼 힘이 종종 생기기에 병원의 약보다 시간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이 시간을 확보하려면 무엇보다 버틸 돈이 필요하고 그래서 나는 이들의 체불임금을 내 돈보다 더 신경 쓰는 것이다.
지난 3년간 이런 과정을 거치던 어떤 근로자에게서 전술한 내용의 톡이 아까 왔다.
내가 반포기 상태로 삶을 이어가는 게 이 여자 눈에도 보였나 보다.
뭐라고 답을 해야 하나?
구체적인 내용은 죽어도 밝히기 싫은데.
이런 날은 나도 술이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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