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 말 처음 하는 건데요, 놀다가세요"
"좀 전에도 같은 말하기에 관심 없다고 했는데 여전히 처음이라네?"
"제가 그랬나요?"
잠이 안 와서 모텔 밖으로 산책을 나왔다.
날씨는 춥지만 머나먼 출장지라 그런지 객창감이 밀려온다.
커피를 테이크아웃하여 걷고 있는데 야시시해 보이는 아가씨가 놀다 가란다.
바로 옆에 있는 양주, 맥주 파는 술집에서 아주 싸게 해준다고 강조한다.
보통 이런 곳에 가면 이쁘장한 아가씨가 말벗을 해주는데 나중에 나오는 계산서가 솔솔치 않다.
일부 업소는 엄청 큰 금액을 요구하기도 하고 거부할 경우 어깨들이 협박하거나 사기죄로 고소한다고도 한다.
법리만 놓고 보면 오히려 술집이 처벌받아야 할 소지가 크나 현실에선 요건을 입증하기가 어렵기에 이런 작태들이 횡행하는 듯하다.
핵심은 이 아가씨가 20여분 전에 같은 말을 했는데 이를 기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런 사람들이 전문직에도 많다.
고의는 아닐지 몰라도 의외로 쉽게 망각하며 그 빈 공간을 자신에게 유리한 기억으로 채우기도 한다.
예전 힘들던 시절, 의료보험료도 못 내서 병원에 제대로 못 가곤 했다.
그러다 어떤 고마운 의사 분을 알게 되어 무료진료를 몇 차례 받았다.
시간이 지나자 의사가 시켜선지 몰라도 간호사가 슬슬 눈치를 준다.
나도 사람인지라 그동안 진료비 안 낸 게 얼마냐고 물었다.
간호사가 총액수를 인쇄해서 줬다.
어렵게 돈을 마련해 계좌로 다 송금을 하고 의사에게 연락하여 그 동안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했다.
그리고 1년여가 흐른 뒤, 또 이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유세를 떤다.
나에게 무료진료를 해준다는 걸 부각시키며 대단한 자부심을 보이는 것이다.
좀 민망해서 오늘은 돈 낼 것이며 과거 진료에 대해서도 이미 송금을 다 하지 않았냐고 말하자 기억을 전혀 못한다.
다행히 송금한 내역이 있기에 보여주니 그제야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실제 수고에 비해 적게 받은 거란 걸 강조한다.
의사뿐만 아니라 다른 좋은 직업 가진 자들 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적지 않다.
업무머리는 대단히 좋은데 의외로 일상사에선 깜박깜박하며 늘 자신을 피해자 내지는 호의를 베푼 자로 생각한다는 공통점을 자주 보인다.
나도 사실 비슷하기에 뭐라 하기 힘들다.
늘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건 예수도 솔직히 많이 힘들기에 영화 <메멘토>가 히트친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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