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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아이러니),인간사,소회,푸념

평생 실패만 하던 남자의 함박웃음

by 강명주 노무사 2023. 6. 4.

그 남자는 한때 집안의 모든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머리가 좋아 #명문대 법대에 진학하고 사법시험을 준비하며 소년등과를 꿈꾼 그에겐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10년 넘게 하고서도 늘 아깝게 떨어졌고 결혼 후에도 시도했지만 더욱 점수 차만 커져버린다.

이젠 더 이상 지원을 못해주겠다는 아버지의 탄식과 남들처럼 우리도 그냥 평범히 살자는 아내의 간청에 드디어 시험을 포기하는 이 남자.

하지만 나이가 너무 많아 취업은 힘들기에 친구와 함께 사업을 시작한다.

이미 법을 많이 공부했기에 법적으론 별 탈 없으리라 여겼지만 현실과 이론 간 갭은 컸는지 닳고 닳은 친구에게 사기를 당하여 그나마 가진 재산 전부를 날리고 만다.

아내가 남의 집 식모살이로 나서야 할 정도의 몰락에 자포자기한 이 남자는 사회 부적응자가 되어 날마다 술이나 마셔대고 정 돈이 필요하면 푼돈을 받고 동네 허드렛일을 하게 된다.

이렇게 수십 년이 지났고 장성한 아이들 눈치도 보이기에 혼자 나와 살게 된 이 남자.

아파트 경비 일을 하며 혼자 벌어 혼자 사는 이 사람에게 가족들도 연락을 거의 안 한다.

법적으로만 가족일 뿐 왕래는 전혀 없다.

자식들의 결혼식에도 오라는 말이 없기에 안 갔던 이 남자에게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모르는 여자로부터 연락이 온다.

며느리라고 본인을 소개한 이 여자는 이 사람의 손자 그러니까 이 여자의 아들 되는 애가 술 먹고 성추행 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잡혀가 있다며 어떻게든 도와달란다.

시아버지가 법 공부 많이 했다는 이야길 자주 들었기에 전화한다는 이 여자.

이 남자는 당장 전후 사정을 알아보고 선임한 변호사가 무죄라는 자기 손자 주장을 지지 안 하고 어떻게든 혐의 인정에 의한 선처만 노린다는 걸 알자 당장 짤라 버린다. 그리고 관할 경찰서로 찾아가 미성년자 조사 시엔 변호사나 보호자 동석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여 결국 본인이 추후 조사에 참석하게 된다.

경찰은 뾰족한 증거 없고 피해자의 증언도 일관성이 떨어지지만 실적 탓인지 기소의견으로 송치하고 검찰에 이를 반박하는 의견서를 열심히 작성하여 제출한 이 남자.

검찰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직접 조사하겠다며 조사일을 통보하고 경찰 조사와 마찬가지로 동석하여 검사에게 열심히 손자에 대한 변론을 한다.

결국 검사 선에서 무혐의처분이 내려지고 이 사건은 이렇게 끝난다.

죽는 사람 취급만 하던 아내와 자식 그리고 며느리와 손자들은 이 사람을 당근 달리 보고 이젠 같이 살자고 하지만 살던 대로 살겠다며 거부하는 이 남자.

망한 걸로만 알았던 자기 인생에도 이런 날이 온다며 혼자 막걸리로 자축을 하기에 내가 제육볶음을 해주며 그랬다.

전술한 손자와 당신 사이엔 전생에 엄청난 인연이 있었을 게 분명하고 당신 삶은 절대 실패한 게 아니라고.

이젠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평소와는 달리 폭음하는 이 남자를 나는 말리지 않았다.

단순히 손자를 위기에서 구해냈다는 차원이 아니고 계속 혼자 살겠다는 덴 아주 특별한 이유가 있을 텐데 가족들이 이를 알까?

수십 년 전 공부 하던 형법 책을 이젠 보지도 않으면서 간직하는 걸 보니 내 마음이 더 애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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