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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자살,구타,안경

화창한 봄이라 더더욱 자살하고 싶은 자에게

by 강명주 노무사 2023. 3. 18.

 

한 줄 요약: #미니시리즈 끝까지 안 보고 중간에 재미없다며 때려쳤는데 나중에 기가 막힌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 경우, 이 중단을 세상은 지지할까? 또한 작가나 pd까지 욕하며 이랬다면 이 비난이 타당할까?

이제 완연한 봄이다.

통계적으로 보면 봄날에 자살률이 급상승한다고 한다.

화창한 날씨 속에 남들은 다들 행복할 것 같기에 본인의 불행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느껴져서 그렇단다.

난 두 번 자살 시도를 했었다.

한 번은 초등학교 때, 한 번은 20대 후반에.

초딩 시절엔 너무 맞는 게 공포스러워서 그랬다.

당시 날 키워주던 인간들은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날 때리며 풀었고 시력이 극도로 나빴지만 누구도 신경 써주지 않아 안경도 없이 반 장님으로 살던 나에겐 이 모든 게 그저 지옥으로만 느껴졌기에 결국 혁대를 벽에 걸고 목을 맸다.

20대 후반엔, 대학 졸업 무렵 다친 다리와 허리가 낫기는커녕 더 나빠지기만 하며 거동조차 힘들어지기에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겠다며 약을 먹었다.

목을 맸을 때는 내 몸무게를 혁대가 이기지 못하고 줄이 끊어져서, 약을 먹었을 땐 누군가 나를 발견하고 병원에 데려가 위세척을 한 덕에, 수십 년이 흐른 뒤에도 나는 계속 생명을 유지한 채 이 글을 쓰고 있다.

가끔은 생각한다.

그때 그냥 죽어버리는 게 나았을 지도 모른다고.

죽지 않고 산 덕에 내 인생은 무진장 잘 풀렸다고 구라라도 치고 싶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운이 좋아 노무사 되어 겨우 내 한 몸 정도 건사할 뿐이며 다 늙어서도 여전히 결혼 한 번 못 해본 독거노인이다.

어차피 구순구개열(언청이)이란 얼굴 기형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내 인생이 잘 풀릴 가능성은 애초부터 낮았다.

유전 가능성 탓에 특히 혼인시장에선 이 결함이 치명적으로 작용하며 그래서 나 또한 2번의 파혼을 경험하고 이젠 아예 포기 중이다.

하루 종일 아니 1년 365일, 말할 상대가 거의 없다는 게 가장 괴롭다.

어떨 땐 마트 캐셔의 아무 의미 없는 인사가 눈물 나게 반갑기도 하다.

만약 집에서 내가 뇌출혈 등이 원인이 되어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찾아올 사람도 없기에 그냥 그렇게 굶어죽는 수밖에 없다.

나름 노력하여 고대 나오고 노무사까지 되었으며 아무런 범죄경력도 없는 내가 성범죄자조차 하는 결혼마저 포기한 채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혀 깨물고 죽고 싶지만 그저 버티고 있을 뿐이다.

 

갑자기 만수르처럼 떼돈이라도 벌면 이거라도 보고 달려드는 여자가 있겠지만 노무사 업에서 그럴 일은 거의 로또이며 전술한 대로 내가 가진 유전병은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널리 알려져서 이젠 상대측에서 먼저 알아채고 거리를 두기에 그저 팔자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내가 안 죽고 계속 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일단 현재 하고 있는 일 때문에 죽지를 못하겠다.

컨설팅과 각종 노동사건을 대리하고 있는 내가 죽으면 고객과 관공서가 입을 피해는 어쩌나? 게다가 이미 약속이 잡힌 강의들도 있는데 덜컥 내가 자살해버리면 날 섭외한 사람은 얼마나 난처해질까?

그리고 또 하나는 신(god)에게 좀 더 떳떳하게 따져 묻기 위함이다.

왜 나에게 유전병과 죽을 만치 괴로웠던 구타 그리고 장님에 가까운 시력을 주었는지 복수해야 할 근본 대상은 바로 신인데 만약 자살을 해버리면 이 복수에 있어 명분이 대폭 감소할 것 같다.

전술한 한 줄 요약처럼 자살은 미니시리즈 시청 중 중간에 포기하는 것과 유사하며 만약 신이 네 인생은 막판에 엄청 잘 풀리도록 세팅해두었다고 한다면 자살한 나만 바보가 되어 신을 비난할 근거가 무지 감소하지 않을까?

도저히 견디기 힘들다고 느껴질 정도라도 자연사할 때까지 버틴다면 저승에서 신을 만났을 때 무진장 당당하게 책임추궁과 복수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서 난 계속 살고 있다.

여기서 하나만 분명히 하자.

난 절대 내가 이런다고 남들도 그러길 바라지는 않는다.

제일 싫어하는 말이 나도 사니 너도 살라는 말이다.

이 말처럼 폭력적인 것도 없다.

사람마다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다 다르고 고통의 정도는 모두 상대적이거늘, 아주 큰 고통을 견뎌낸 누군가를 들먹이며 그보다 네 고통은 작을 테니 무조건 살라고 하는 게 과연 타당할까?

안 죽고 자연사한 헬렌 켈러를 생각한다면 그보다 대다수 사람들의 고통을 덜할 거라는 점에서 절대 자살하면 안 되나?

자살도 인간 삶의 한 방식이다.

이를 무조건 비난하는 것도 틀린('다른'이 아니고 '틀린'이다) 견해다.

요즘은 자살방조니 자살정보유포니 하여 자살에 대한 지지 의견 자체를 뿌리째 뽑으려 하나 아무리 그래도 자살할 사람은 사람은 반드시 자살하고 자살하면 절대 안 된다는 주장이 무조건적 진리라는 근거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정 힘들면 자살해도 좋다.

자살하면 지옥 간다느니, 남은 가족은 어찌 사냐느니 같은 말은 다 개소리다.

본인이 도저히 살 수 없을 정도로 힘들다는데 왜 제3자가 지랄인가?

다만, 전술한 나의 자살 안 하는 이유 두 번째를 한 번만이라도 생각해 주면 좋겠다.

물론 이 견해는 자살할 용기가 없는 독거노인 노무사의 망상에 불과할 수도 있으나 진짜 신이 존재하는데 이 신이 자살했다는 이유만으로 오히려 기고만장해서 저승에 온 자살자를 비난하고 든다면 겁나게 열받지 않을까?

성범죄 가해자가 피해자를 비난하는 것과 동일할 것 같은데....

그런데 인생 막판에 대단한 반전을 세팅할 정도로 신은 착하지 않을 거란 견해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내 생각에도 살다 보면 좋은 날 올 거란 말은 거의 거짓 같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가 떠든 게 모든 헛소리가 될 텐데, 막판반전이 없음에도 포기 안 하고 계속 살았다는 사실만으로 신은 절대 이 자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거나 최소한 내세에서라도 우대해 줄 거란 또 다른 논거를 내가 개발해 낸다면 여기 동조해 줄 동지 어디 없느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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