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 딸이 이렇게 당해도 지금처럼 말할 수 있어?"
꽤나 오래 전의 일이다.
늦은 밤 야근을 마치고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가 어떤 성범죄를 목격한다.
젊은 여자 하나가 내 앞에 서 있었고 뒤에선 술이 적당히 취한 일행들이 나와 이 여자를 지나쳐가고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이 일행 중 어떤 남자가 손을 옆으로 뻗더니 내 앞에 서 있던 여자의 둔부 사이를 쓰다듬듯 만지고는 갈 길을 간 것이다.
버스 정류장의 천장과 벽 탓에 다소 어두웠지만 지나가는 차의 헤드라이트가 마침 이 여자를 그대로 비췄기에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여자는 너무 놀라 바로 주저앉았고 괜찮으냐고 다가가 물으니 숨도 제대로 못 쉰다.
바로 달려서 가해자인 남자를 붙잡고 저 여자에게 한 행위에 대해 신고하겠다고 하자 자신은 전혀 그런 적 없다면서 오히려 날 미친놈 취급했다.
같이 있던 일행들도 모두 이 남자편만 들며 나와 피해자인 여자를 꽃뱀으로 간주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순가 빡이 돌대로 돌아 바로 경찰을 불렀고 금방 순찰차가 왔다.
정류장 의자에 앉아있던 여자에게 전후사정을 먼저 묻고 나랑도 이야기를 하더니 가해자인 남자와도 대화를 나눈다.
가해자와 그 일행은 여전히 오리발만 내밀었다.
가만 눈치를 보니 이들은 친한 상인들인데 이날 모임에서 저녁 겸 반주 한잔을 걸친 뒤 귀가하는 길이었다.
이 남자가 안 그랬다는 증언을 하는 사람은 많은 반면 했다는 사람은 나뿐이라 경찰이 다소 난감해하는 모습을 보이기에 내가 그랬다.
제3자인 나와 평소 친했던 사람들 중 누가 더 객관적이겠냐고.
그리고 난 저 여자와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재판 가도 증언할 자신 있다고.
이를 모두 들은 경찰이 일단 그럼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잔다.
나랑 여자는 이에 당근 찬성했지만 가해자인 남자와 일행들은 많이 당황하더니 그냥 실수로 스쳤을 수도 있는데 그랬다면 미안하다며 갑자기 돌변한 태도를 보인다.
이에 경찰은 감을 잡았는지 지금은 임의동행 형식이지만 여차하면 강제수사로 전환할 수도 있다는 말을 강하게 했다.
결국 나랑 여자 그리고 해당 남자는 순찰차를 타고 경찰서로 향했고 이 남자가 안 그랬다고 그토록 목소리 높이던 일행들은 돌연 꼬리를 내리더니 추행을 했는지 안 했는지 자신들은 못 봤다며 도망치듯 제 갈 길을 가버렸다.
여자랑 나를 먼저 조사하는 것 같았고 귀가해도 좋다기에 새벽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여자가 많이 놀랐는지 울기도 하기에 아침 밝는 대로 정신과 가서 신경안정제라도 처방받아 먹고 진단서도 받아서 꼭 경찰에 제출하라고 했다. 합의거부와 엄벌탄원서 제출, 지급명령 신청 등 성범죄 피해자 입장에서 알면 좋은 것들을 모두 알려줬다.
내 연락처를 묻기에 찍어줬고 다음날부터 바빴기에 이 일은 금방 잊었다.
며칠 전 이 여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하도 오래전 일이라 왜 이제야 연락했냐고 물으니 이미 모든 과정이 다 끝났지만 마침 그 무렵 코로나에 걸려 상당기간 고생을 하다 최근에 들어서야 좀 정신을 차렸기에 전화를 한 거란다.
결과적으로 기소의견으로 송치가 되었고 그래도 남자는 부인을 했으며 검찰조사도 받았단다.
이 과정에서 해바라기 센터를 통해 당시 입고 있던 청바지에 대한 dna 검사를 시행했고 가해자의 dna가 나왔단다.
이러자 남자는 실수였다며 말을 바꿨고 이를 검사가 괘씸하게 보았는지 구공판 기소되었으며 1심에서 실형을 받고 바로 법정구속 되었단다.
남자가 뒤늦게 선임한 변호사에게서 합의요구하는 전화가 왔지만 내가 알려준 대로 유죄판결 확정 후 지급명령으로 처리할 테니 절대 다시는 이런 전화하지 말라고 했고 그 뒤론 아무 연락이 없었단다.
정신과 의사가 써준 진단서도 당근 제출했고 이 사건으로 인해 집과 직장에서 얼마나 힘든지를 솔직히 적은 엄벌 탄원서도 냈는데 이것들이 실형 나오는 데 큰 역할 한 것 같다고 피해 여자는 나에게 말했다.
굉장히 고마웠다며 밥이라도 산다기에 중간에 합의 안하고 끝까지 간 의지가 난 오히려 고맙다며 됐다고 했다.
내 피 같은 시간과 정열 쏟아가며 대신 신고도 해줬는데 중간에 합의하고 유야무야 됐으면 나만 바보 되기 십상이기에 이걸 난 가장 많이 걱정했었다.
너무 자연스럽게 만지고 가는 수법을 보니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cctv가 없는 사각지대였고 조명이 유난히 어두운 장소였다는 걸 돌아보면 치밀하게 미리 계획했음이 분명하고 만약 나라도 안 봤으면 이 여자만 꽃뱀 만들고 유유히 빠져나갔을 가능성이 거의 100프로였다.
40대 초반의 꽤나 호남형이던데 역시나 성범죄자는 외모와 무관한가?
이 남자만 오리발을 내밀었다면 내가 전술한 각종 조언까지 다 해주는 등 어떻게든 엄벌 받도록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 가족도 아니고 속된 말로 나에게 1원 한 장 안 생기며 난 그닥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다.
가장 날 뚜껑 열리게 한 건 이 남자의 일행들이 보인 가증스러움이었다.
아무리 평소에 친했어도 사회가 절대 용인하지 않는 행동을 했으면 책망하고 합당한 처벌을 받게 해야 할 터인데 무조건 싸고돌며 오히려 피해자를 미친 여자 만드는 그들을 보니 이 건을 그냥 넘기면 평생을 후회할 듯하여 내 일처럼 발 벗고 나서게 되었다.
가해자 옹호하던 자들은 내가 이 글의 맨 처음에 나오는 질문을 하자 그제야 자신들도 부끄러운지 입을 다물고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이렇게 성범죄자도 감싸주는 그릇된 패거리 문화와 자신의 성적욕망 충족을 위해 타인에게 그 어떤 가해행위도 서슴지 않는 정신병자들이 여전히 차고 넘치는 한국사회를 어쩌면 좋나.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주지 않았고 그래서 그 남자 제대로 처벌받지 못하게 했다면 자살했을지도 모른다고 피해 여성은 말했다.
이게 과연 과장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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