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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존중,비하,찾기,성장)

장미와 촛불 그리고 늙은 소년

by 강명주 노무사 2022. 12. 9.

 

 

"혼자 갈 수 있지?"

"응"

이 짧은 대화를 마지막으로 그들은 소년을 홀로 놔두고 가버렸다.

#고속버스 차표와 라면 한 그릇 구매할 정도의 돈만 쥐여준 채.

혼자 그 머나먼 집까지 돌아가는 게 무서웠지만 이를 이야기해도 그들은 마찬가지로 가버렸을 터이기에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에게 돈을 도둑맞기 전에 차표부터 구입하려고 역무원에게 다가갔지만 아직 그 시간대는 판매를 안 하니 나중에 오란다.

대기실 의자에 앉아보니 너무 무료하다.

이 상태로 2시간이나 기다려야 하다니.

멍하니 창문을 통해 역 밖을 바라보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혼자 하얀 눈밭을 헤매는 꿈을 꾸다가 추워서 깼다.

빵과 우유라도 사 먹으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아무것도 안 만져진다. ​ ​

너무 놀라 혹시 바닥에라도 흘렸는지 열심히 찾아보았지만 1원 한 장 안 보인다.

밥이야 굶으면 그만이지만 이제 집에 어찌 가나.

역무원에서 달려가 사정을 이야기해 보았지만 잘 찾아보라는 말만 할 뿐이다.

제때 못 들어가면 그들이 또 때릴 텐데.

집에 전화를 해서 사정을 말할 경우, 과연 돈을 보내 줄까?

보내주더라도 이를 이유도 또 지하실에 가둘 텐데....

역구내에 자리 잡은 국밥집에서 무진장 좋은 냄새가 난다.

돈은 없지만 저절로 발길이 그쪽으로 향한다.

입구에 서서 하염없이 냄새만 맡고 있는데 어떤 사내가 묻는다.

혼자냐고.

이런 사람들은 멀리해야 한다는 말을 이성이 했지만 지금의 암담함과 배고픔은 누구에게라도 의지하고픈 마음을 불러일으켰기에 그렇다고 답했다.

들어가서 같이 먹자고 사내가 제안한다.

공짜 밥 사준다는 자는 정말 위험하다는 걸 소년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돈을 잃어버렸다는 사실만으로 지하실에 끌려가 또 맞을 걸 생각하니 이 말을 그저 따르고 싶다.

사내가 사주는 국밥을 다 먹고 나니 같이 어디 좀 가잔다.

따라가면 절대 안 되고 지금이라도 주위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는 이성의 소리를 또 소년은 묵살했다.

지금까지 줄곧 조심하고 살아온 결과, 남은 건 그들의 방치와 구타뿐이었다는 걸 떠올리자 자포자기의 욕구만 커진다.

역 밖에 주차하고 있던 봉고차에 올랐다.

이 소년 또래의 아이들이 이미 타고 있고 다들 비슷한 사연으로 모인듯하다.

그들은 내가 없어지면 슬퍼할까?

아니, 오히려 입 하나 줄었다고 기뻐하겠지.

이렇게 소년의 인생은 첫 나락으로 빠져든다.

퇴근길에 장미 한 송이와 양초 그리고 막걸리를 사 왔다.

집안의 불을 모두 끈 채, 양초를 켜고 바로 옆에 장미를 꽂아두었다.

촛불 속에 그때 그 소년이 보인다.

장미의 영상이 어른거리며 소년의 눈물을 가려주고 있다.

반강제로 당시 봉고차에서 먹어야 했던 술도 막걸리였다.

맛은 여전히 쓰기만 하다.

이 양초가 다 타고나면 이 소년에 대해선 한동안 또 잊어야 하겠지.

그게 될까?

그때 그 역에서처럼 혼자 보내야 하는 기나긴 겨울밤이 이 장미 덕에 덜 외로우면 좋겠는데....

PS: 이 짧은 글을 쓰는 데 3일이 걸렸다. 그 어느 글보다 아팠다. 병원 가면 치료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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