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환율이 올라 원단수입이 너무 부담스러워"
"원단장사 안 한 지 꽤 되잖아?"
"아, 그게...."
스스로 #최면을 거는 경우가 있다.
영어가 약한 사람이 난 무조건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하거나 다소 남자답지 못한 자가 일부러 자신은 무지 남자답다고 세뇌하는 게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자신감 강화차원에서 직업이 있다고 뻥을 치다가 이를 자기도 모르는 게 믿고 마는 무직자도 간혹 보인다.
과거 내가 그랬다.
백수 시절, 무역회사를 운영한다는 거짓말을 하고 다닌 적이 있다.
이를 통해 별다른 이익을 얻지 않았기에 사기엔 해당하지 않겠지만, 도의적으론 분명히 문제 있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돈이 모이면 무역회사를 어차피 운영할 테니, 다소 미리 그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건 별 문제 안 될 거란 자기합리화를 해버린다.
물론 무역과 관련된 일체의 지식이 없었고 이를 배울 생각도 없었기에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뜨거울 정도로 부끄럽기만 하지만 자꾸 이렇게 말하고 다니자 어느새 진짜 내가 무역회사 사장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임자를 만난다.
이 사람은 실제 무역회사에서 일하고 있었고 같은 업종임을 알자 처음엔 무지 반가워했지만 대화를 하면 할수록 관세 등도 내가 모른다는 게 드러나자 무역협회 등을 통해 내 말이 사실인지 조사해 보고 싶다는 뼈 있는 농담까지 하게 된다.
이 일은 내게 아주 큰 충격이었고 그 뒤론 어떻게든 진짜 직장을 얻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전술한 대화는 내 친구랑 나눈 것이다.
이 친구는 몇 년 전 큰 회사에서 희망퇴직을 당했고 지금은 무직이다.
퇴직한 직후, 고등학교 동창이랑 원단을 수입한 뒤 가공판매하는 일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얼마 안 지나 이 동창과 의가 갈리며 그만 두었다.
그리고 나선 직장 다니는 아내가 밀어준다며 세무사 공부를 하기도 했고 이마저 맘처럼 합격 못하자 자포자기한 듯 지난 2~3년은 별다른 직업이 없었다.
그런데 며칠 전 술자리에서 이 친구가 전술한 말을 하기에 나도 모르게 반문했고 본인도 꽤나 놀란 눈치다.
원단장사를 계속했다면 환율이 오른 요즘 많이 힘들었을 거란 생각을 자주 하다 보니 이런 착각을 하게 된 걸까?
너무 민망해서 나는 화제를 바로 돌렸고 이 친구는 영 대화에 집중을 못 하더니 잠시 뒤 다른 일을 핑계 대며 귀가를 서둘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장년에게 가장 무서운 건 물리적으론 가난이고 정신적으론 실직아닐까?
돈만 있으면 생활은 가능하나 직업이 없을 때의 위축감은 돈으로도 채워지기 힘들다.
이 친구 역시 아내가 기죽지 말라며 풍족한 용돈을 주는 듯하나 직업 없이 이렇게 살아야 하는 스스로에 대해 대단히 불만스러워하는 눈치다.
정년(보통 60세) 이후에도 할 수 있는 일을 구하는 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일부의 주장이 나이가 들수록 허투루 안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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