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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한낮의 어둠> (이념에 모든 걸 걸었던 자들에 대한 소설)

by 강명주 노무사 2022. 9. 7.

독후감: 한낮의 어둠​

저자: 아서 쾨슬러​

출판사: 후미니타스​

공산당 활동을 하다 전향한 작가가 스탈린 시절 소련을 가상의 국가에 빗대어 비판한 작품이다.​

근자에 본 소설 중 가장 무거웠기에 1달 만에 간신히 완독했고 소감은 다음과 같다.​

- 번역이 좀 그렇다. 지시대명사의 적절한 사용 등에서 많이 미흡해 보인다. 한 번에 이해 못 하고 2번, 3번 읽어야 하는 구절이 많아서 짜증이 빈번했다. 80년대 초에 한길사에서도 최승자 시인의 번역으로 이 책이 나왔었다던데 번역 수준을 비교한다는 차원에서 꼭 구해서 보고 싶다. ​ ​

- 오늘날 진보 측의 고민과도 일맥상통한다. 옳은 일을 하기에 어떤 수단이라도 선택가능하다는 주장과 목적이 수단을 늘 정당화시켜주지는 못 한다는 주장 간 대립은 진보들의 영원한 화두인데 소련 혁명 직후에도 이는 존재했다. 혁명의 유지를 위해 결국 전자가 승리했고 후자를 주장한 자들은 대대적으로 숙청당했으며 이 소설의 주인공 역시 후자에 속했다.​

- 잠 못 자게 하는 고문이 짱이다. 주인공은 누구보다 열렬히 혁명에 앞장섰고 친했던 애인이나 동지들이 자기 때문에 사형당해도 눈 하나 깜빡 안 할 정도의 강심장이었지만 수마睡魔에 결국 굴복한다. 굳이 때리지 않더라도 장시간의 신문 후 1시간 정도만 자게하고 다시 신문을 하는 행위를 반복하자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는 자백서에 사인을 했다. 근데 아이러니한 건 이 방법을 한국의 수사기관도 애용했었다는 사실이다. 무더운 여름에 식사로 육개장을 주며 물은 안 주는 방법도 더불어 사용했다고 언젠가 월간지에서 읽었다. 지금이야 인터넷의 발달과 인권의식 향상으로 이러지 않겠지만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했던 국가라는 걸 생각하면 충분히 이러고도 남았을 것이다. ​ ​ ​ ​ ​ ​

- 스탈린 시절, 그의 연설 직후 기절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연설을 그가 마치자 박수를 치기 시작한 자들 중 가장 먼저 멈춘 자를 시베리아에 보냈다는 소문이 돌자, 이에 해당하지 않기 위해 모두가 주위 눈치를 보면 조금이라도 더 오래 박수를 치려했고 그러다 피곤에 지쳐 기절했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장면이 이 소설에도 나온다. 다소라도 논리에 근거하여 신문을 하려는 정부고관의 눈엔 주인공 같은 피신문자를 무조건 고문하려 드는 직속 부하가 영 못마땅해 보인다. 하지만 이 직속 부하 눈엔 상사야말로 반혁명세력을 옹호하는 자로 보였고 결구 이 부하가 이긴다. 상사는 그 사상이 의심스럽다고 하여 갑자기 체포된 후 처형되고 만 것이다. 무조건적인 충성만큼 달콤한 게 없다던 모 사장의 말이 떠오른다.​

- 이념 앞에선 사랑도 부질없다, 아니, 그저 성욕의 충족수단으로만 전락하는 게 보통 같다. 주인공 역시 자신의 비서이자 연인이었던 여자에 대해 감옥에 갖힌 뒤 많은 생각을 하나 그녀의 육체가 주던 포근함과 쾌락이 주를 이룬다. 이념은 늘 사랑보다 우월한가? 사랑을 위해 이념을 버린 자를 역사와 세상은 배신자라고 욕만 하던데 왜 그래야 하지? 그 잘난 이념이 세상을 얼마나 좋게 바꿨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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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는 없다. 무지 없다.

그냥 유튜브의 웃기는 영상 보는 게 재미 면에선 백 배 낫다.​

그리고 창녀의 생리대 쪼가리보다도 못하게 취급받는 게 요즘 이념의 현 주소임을 너무 잘 안다. ​ ​ ​ ​ ​ ​

그럼에도,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신의 영혼까지 걸고 세상을 바꿔보려 했단 자들의 피와 땀을 느껴보고 싶다면 강추한다.​

ps: 저자 사후에 이 저자가 사실은 강간범이었다는 고백이 나온다. 저자의 친구의 아내가 피해자인데 세상의 눈이 무서워서 침묵을 지키다 용기를 내어 고백했다고 한다. 이 고백으로 얻을 게 거의 없어 보인다는 점에서 내 눈엔 신빙성이 높아 보였다. 이런 저자의 흠이 마음에 걸린다면 이 책을 안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이 강간이 사실이었다면 저자가 말년에 파킨스 병에 걸려 자살을 한 게 하늘이 내린 벌에 해당되지 않나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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