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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내가 고려대를 사랑하는 이유

by 강명주 노무사 2020. 9. 9.

내가 대학을 다니던 수십 년 전, #고려대의 학풍은 간단히 말해 자유방임이라 할 수 있었다.

교수도 학생을 특별히 쪼이지 않았고 학교도 교수들에게 논문 등에서 별다른 스트레스를 안 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혹자는 고대 특유의 엄격한 선후배 관계가 피곤할 거라 여기지만 4년 내내 학교 사람들과 술자리조차 거의 안 할 정도의 나 같은 아웃사이더도 전혀 불편함을 못 느낄 정도로 고대는 자유로웠다.

그러다 보니 이를 악용하는 구성원들이 생겨나기도 했는데 내가 바로 전형적인 케이스일 것이다.

수업은 전혀 안 들어가다가 시험날에만 당일치기 공부를 하고 들어가는 걸 반복했는데 이런 나에게 어떤 교수는 혼을 내기는커녕, 가끔 얼굴이라도 보여달라며 농담을 했다.

아마 지금은 고대도 상당히 학사행정이 타이트해졌다고 들었다.

요즘 대학을 다녔다면 타고난 사회 부적응자인 나는 그 어떤 대학도 졸업하기 힘들었을 것이고 과거에도 그나마 고대니까 나에게 졸업장을 준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절대 이 글은 고대가 최고라는 걸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고대도 아주 문제 많다.

종종 터지는 성적 일탈이 특히 문제인데 내 추측엔 아직도 일부 남아있는 지나친 자유방임과 이젠 대세가 된 수시모집의 부작용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글에서도 썼지만 나는 이에 대해 고대 총장실에까지 전화하여 시급한 시정을 요구하는 등 항의도 많이 했다.

이런 점까지 고대를 감싸줄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이젠 점점 사라져가며 합리성을 주장하기 힘들어진 고대의 학풍이 매우 아쉽기는 하다.

전술한 부작용도 물론 크지만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그릇을 크게 만드는 데는 자유방임이란 고대 학풍이 대단히 우수하다.

나 역시 그토록 공부를 안 했지만 필이 오는 분야는 시험과 무관하게 논문까지 파고들었었고 이렇게 익힌 공부법은 중년의 나이에 노무사 시험에 합격하고 개업하여 자리를 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을 키우기 위해 여타 부작용을 감수하느냐, 대다수 조직들과 마찬가지로 말 잘 듣는 소시민의 다량 생산(?) 등 사회의 선호를 따르느냐.

이 기로에서 고대도 후자를 선택한 듯한데 그래도 왜 전자의 분위기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를 나는 이토록 바라는 건지.

고대 아닌 어딘가에서라도 제발 살아남았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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