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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고, 요양원 시절

노래가 끝나갈 때의 그 공포

by 강명주 노무사 2021. 9. 12.

"절대 멈추지 마!!! 부른 노래 또 부르더라도 결코 스톱하면 안 돼"​

요양원 시절, 추석이나 설이 가까워지면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원생들은 막걸리를 사다 먹곤 했다.​

안주라곤 김치가 전부였지만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기 위해 나처럼 술을 못 마시는 자도 한두 사발은 꼭 마셨다.​

얼추 취기가 오르면 누군가가 노래를 시작했다.​

싸구려 뽕짝부터 발라드, 가곡까지 종류는 상관이 없었다.​

사람들이 많이 아는 노래일수록 환영받았고 너도나도 따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처음 일정 시간은 분위기가 대단히 좋았다.​

하지만 차차 새로이 나올 노래도 없고 사람들도 지쳐갈 때면 묘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가족에게서도 버림받은 잉여인간에 불과하다는 우리 모두의 처지를 노래가 끝난 뒤 다시금 고개를 쳐들 이성 탓에 또 직시해야 한다는 현실에 노래의 중단을 전부가 대단히 무서워한 것이다.​

그래서 전술한 말을 대놓고 하는 자도 있었지만 늘 언젠가는 노래가 멈췄고 곧바로 구슬피 우는 사람이 나타나는 등 분위기는 급변했다.​

백수 시절, 명절이 되면 만날 사람도 없고 할 일도 없었기에 도서관에서 소설책을 최대한 많이 빌리곤 했다.​

밥 먹는 시간을 빼면 책만 보았는데 혼자 사는 백수라는 처지를 잊기 위한 현실도피였다.​

그러다 드디어 마지막 책을 집어들 때면 이 책을 다 보고 난 후의 무료함을 어찌 견디나 하는 공포에 심장까지 아파왔다.​

요즘도 그닥 일을 열심히는 안 하니 백수나 진배없다.​

하지만, 의미 없는 소설책이 아니라 노동판례라도 보며 시간을 킬링할 수 있고 정 심심하면 교과서 등을 통해 다른 법에 대한 공부도 할 수 있다.​

이들 판례와 법률은 내가 죽는 그날까지 계속 업데이트 될 것이기에 노래가 끝나는 순간에 대한 공포는 이제는 딴 세상 이야기가 되었다.​

게다가 이렇게 얻은 지식으로 내 입에 풀칠 정도는 할 수 있고 적당히 존중도 받는다.​

10여 년 전, 노무사 시험을 보겠다고 했을 때 반대하는 다수에게 나는 말했다.​

돈, 명예 다 부차적이고 시험합격으로 이 심심함만 달랠 수 있다면 만족이라고.​

목표를 이룬 지금, 난 더 행복해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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