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멈추지 마!!! 부른 노래 또 부르더라도 결코 스톱하면 안 돼"
요양원 시절, 추석이나 설이 가까워지면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원생들은 막걸리를 사다 먹곤 했다.
안주라곤 김치가 전부였지만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기 위해 나처럼 술을 못 마시는 자도 한두 사발은 꼭 마셨다.
얼추 취기가 오르면 누군가가 노래를 시작했다.
싸구려 뽕짝부터 발라드, 가곡까지 종류는 상관이 없었다.
사람들이 많이 아는 노래일수록 환영받았고 너도나도 따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처음 일정 시간은 분위기가 대단히 좋았다.
하지만 차차 새로이 나올 노래도 없고 사람들도 지쳐갈 때면 묘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가족에게서도 버림받은 잉여인간에 불과하다는 우리 모두의 처지를 노래가 끝난 뒤 다시금 고개를 쳐들 이성 탓에 또 직시해야 한다는 현실에 노래의 중단을 전부가 대단히 무서워한 것이다.
그래서 전술한 말을 대놓고 하는 자도 있었지만 늘 언젠가는 노래가 멈췄고 곧바로 구슬피 우는 사람이 나타나는 등 분위기는 급변했다.
백수 시절, 명절이 되면 만날 사람도 없고 할 일도 없었기에 도서관에서 소설책을 최대한 많이 빌리곤 했다.
밥 먹는 시간을 빼면 책만 보았는데 혼자 사는 백수라는 처지를 잊기 위한 현실도피였다.
그러다 드디어 마지막 책을 집어들 때면 이 책을 다 보고 난 후의 무료함을 어찌 견디나 하는 공포에 심장까지 아파왔다.
요즘도 그닥 일을 열심히는 안 하니 백수나 진배없다.
하지만, 의미 없는 소설책이 아니라 노동판례라도 보며 시간을 킬링할 수 있고 정 심심하면 교과서 등을 통해 다른 법에 대한 공부도 할 수 있다.
이들 판례와 법률은 내가 죽는 그날까지 계속 업데이트 될 것이기에 노래가 끝나는 순간에 대한 공포는 이제는 딴 세상 이야기가 되었다.
게다가 이렇게 얻은 지식으로 내 입에 풀칠 정도는 할 수 있고 적당히 존중도 받는다.
10여 년 전, 노무사 시험을 보겠다고 했을 때 반대하는 다수에게 나는 말했다.
돈, 명예 다 부차적이고 시험합격으로 이 심심함만 달랠 수 있다면 만족이라고.
목표를 이룬 지금, 난 더 행복해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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