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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고, 요양원 시절

왜 '나'에게 그런 일이?

by 강명주 노무사 2021. 4. 12.

"난 내가 실명하기 바로 전날을 너무 생생히 기억하고 있어. 센치하게 만드는 비가 왔고 이를 마음껏 즐기며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셨지. 그리고 집에 와 보고서를 마무리 짓다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눈을 뜨자 세상이 온통 암흑으로 변해 있었어"​

내가 사고를 당하던 날에도 비가 왔다.​

당시 별다른 걱정 없던 나는 강의를 듣고 알바를 했으며 만화가게에서 라면까지 곁들인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저녁에 술을 한잔했고 귀가하던 길에 그 사고를 맞이한다.​

내가 겪은 사고에 대한 통계자료를 보니 대충 1/100000확률로 매년 발생한다.​

그런데 나는 치료과정에서 의료사고까지 겹쳤다.​

의료사고 확률을 1/10000이라 잡으면 서로 독립이니 십억분의 1의 확률에 당첨된 거다.​

전술한 이야기는 요양원에서 만난 어떤 아저씨가 한 말이다.​

이 아저씨는 전혀 앞을 보지 못했고 그래서 결국 거기까지 흘러온 거다.​

요양원에서 만난 사람들 중 치료 후에도 영 사회에 적응 못하는 자들이 적지 않았다.​

이들은 사고 당시의 억울함을 잊지 못하고 '왜 나에게'라는 의문에서 늘 벗어나지 못 한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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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이렇게 비가 올 때면 사고 당일이 자주 떠오른다.​

내가 원하던 모 대기업 입사가 확정된 상태였기에 더욱 그런가 보다.​

그 사고만 없었다면 나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를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이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내 적성과는 거리가 멀다.​

대학 시절 곽윤직의 <민법총칙>을 딱 1페이지만 보고난 뒤, 법은 내 길이 아니라고 판단했는데 그 판단이 옳았다.​

전술한 대기업에서 내가 할 일이 가장 내 특성에 부합했는데 나는 말 그대로 다 된 밥에 코 빠뜨린 꼴이 돼버렸다.​

비틀린 인생을 바로잡다보니 당시엔 새치 하나 없던 머리가 지금은 백발이 성성하다.​

사회에 적응 못한 요양원 지인들은 술집 등에서 계속 문제를 일으키거나 알콜 중독 등에 빠지기도 한다. ​

얼마 전에도 어떤 사람이 호스테스를 때리다가 경찰에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들이 왜 이러는지 너무 잘 알기에 더 마음이 아프다.​

자신의 귀책사유 없이 발생한 사고에 대한 원망과 후회만큼 인생을 좀먹는 게 또 있을까?​

왜 이리 늙었냐는 동창의 말이 물론 농담이겠지만 나는 왜 이리 아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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