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가 실명하기 바로 전날을 너무 생생히 기억하고 있어. 센치하게 만드는 비가 왔고 이를 마음껏 즐기며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셨지. 그리고 집에 와 보고서를 마무리 짓다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눈을 뜨자 세상이 온통 암흑으로 변해 있었어"
내가 사고를 당하던 날에도 비가 왔다.
당시 별다른 걱정 없던 나는 강의를 듣고 알바를 했으며 만화가게에서 라면까지 곁들인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저녁에 술을 한잔했고 귀가하던 길에 그 사고를 맞이한다.
내가 겪은 사고에 대한 통계자료를 보니 대충 1/100000확률로 매년 발생한다.
그런데 나는 치료과정에서 의료사고까지 겹쳤다.
의료사고 확률을 1/10000이라 잡으면 서로 독립이니 십억분의 1의 확률에 당첨된 거다.
전술한 이야기는 요양원에서 만난 어떤 아저씨가 한 말이다.
이 아저씨는 전혀 앞을 보지 못했고 그래서 결국 거기까지 흘러온 거다.
요양원에서 만난 사람들 중 치료 후에도 영 사회에 적응 못하는 자들이 적지 않았다.
이들은 사고 당시의 억울함을 잊지 못하고 '왜 나에게'라는 의문에서 늘 벗어나지 못 한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나 역시 이렇게 비가 올 때면 사고 당일이 자주 떠오른다.
내가 원하던 모 대기업 입사가 확정된 상태였기에 더욱 그런가 보다.
그 사고만 없었다면 나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를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이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내 적성과는 거리가 멀다.
대학 시절 곽윤직의 <민법총칙>을 딱 1페이지만 보고난 뒤, 법은 내 길이 아니라고 판단했는데 그 판단이 옳았다.
전술한 대기업에서 내가 할 일이 가장 내 특성에 부합했는데 나는 말 그대로 다 된 밥에 코 빠뜨린 꼴이 돼버렸다.
비틀린 인생을 바로잡다보니 당시엔 새치 하나 없던 머리가 지금은 백발이 성성하다.
사회에 적응 못한 요양원 지인들은 술집 등에서 계속 문제를 일으키거나 알콜 중독 등에 빠지기도 한다.
얼마 전에도 어떤 사람이 호스테스를 때리다가 경찰에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들이 왜 이러는지 너무 잘 알기에 더 마음이 아프다.
자신의 귀책사유 없이 발생한 사고에 대한 원망과 후회만큼 인생을 좀먹는 게 또 있을까?
왜 이리 늙었냐는 동창의 말이 물론 농담이겠지만 나는 왜 이리 아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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