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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감정,슬픈 사람들

시간이 멈춰버린 사람들과 블루투스 스피커

by 강명주 노무사 2023. 6. 13.

 

아까 모 #건설현장에서 면접관 일을 했다.

 

현장소장이 새로 일용직을 뽑으며 도와달라기에 거들어 준 것이다.

 

이 소장은 얼마나 일을 잘할지에 포커스를 맞춰 질문을 했고 나는 해당 지원자의 전과자나 신용불량자 여부 등에 주로 초점을 두었다.

 

얼추 일이 끝나갈 무렵 어떤 중년의 남자가 들어온다.

 

이력서상 나이는 나보다 어린데 외모는 훨씬 더 들어 보인다.

 

이런 일 해봤냐고 소장이 묻자 처음이란다.

 

초보에 나이까지 많으면 금방 그만두거나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기에 소장은 당장 인상을 쓴다.

 

푸석푸석한 얼굴이 영 햇빛을 오래 못 본 듯하기에 내가 물었다.

 

지금 대통령이 누군지 아냐고

 

순간 심장이라도 칼에 찔린 양 깜짝 놀란다.

 

말까지 더듬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결론적으로 몰랐다.

 

이명박 아니냐는 말이 대단히 인상 깊게 들렸다.

 

오래전 요양원에 있을 때 이런 자들을 아주 많이 봤다.

 

자의반 타의반 삶을 포기하며 아예 시간의 흐름조차 멈춰버린 자들 말이다.

 

나도 물론 포함되었기에 너무 잘 아는데 이들은 일단 낮에는 집 안에만 있으려 한다.

 

해가 지고 자신의 비참한 현 상태를 사람들이 알아채기 힘들게 하는 어둠이 깔려야 겨우 밖으로 나온다.

 

자연히 정상적인 일자리는 얻을 수 없고 이미 가족과도 연이 끊긴 경우가 대부분이며 여타 인간관계 역시 대단히 어렵기 마련이다.

 

당시 나는 처음엔 사고로 몸이 안 움직여서, 몸이 좋아지고 난 후엔 청춘 다 날리고 이렇게까지 몰락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기에 세상으로부터 애써 고개를 돌렸고 자꾸만 나 혼자만의 세계로 함몰되어 갔다.

 

여전히 이명박 시대에 살고 있는 전술한 지원자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다만 자신의 시계가 멈춰버렸다는 사실을 누군가가 알아챘다는 게 너무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는지 간단한 청소자리는 있다는 소장의 말조차 한 귀로 흘린 채 이 남자는 도망치듯 나가버렸다.

 

하지만 이 남자의 시계가 멈춰있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그 언젠가 다시금 이 시계를 작동토록 할 때 느낄 후회와 자괴감은 커질 것이며 지나치게 클 경우, 이 충격 탓에 또 다시 시계는 멈출지도 모른다.

 

누가 블루투스 스피커를 줬다.

 

아주 좋은 건 아니고 노트북에 사용하는 조그만 것인데 난 사실 블루투스 제품을 처음 써본다.

 

스피커나 이어폰 외에는 블루투스를 이용하여 연결할 제품을 쓸 일이 없고 오디오기기는 무조건 유선이 무선을 앞선다고 여겼기에 블루투스 제품 자체를 구매할 일이 없었다.

 

시험 삼아 노트북과 연결하고 음악을 틀자 대단히 만족스런 음질을 보여준다.

 

유선 못지않으며 블루투스에 특화된 기능을 켜자 유선을 능가할 지경이다.

 

이 좋은 걸 그동안 왜 난 모르고 살았을까?

 

노무사가 되고 난 후엔 다시금 내 시계를 가동시켰지만 성에 차지 않은 내 모습에 일정 부분에선 여전히 시간이 가고 있지 않았고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이 블루투스 아닐까.

 

영원히 난 나 자신 그리고 내 인생에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그럭저럭 괜찮은 자격증 따서 죽는 날까지 밥은 굶지 않을 나를 세상은 어찌 볼지 모르지만 내 성엔 절대 찰래야 찰 수가 없다.

 

언제가 돼야 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사랑까진 안 하더라도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은 해야 할 텐데....

 

이런 내가 강의에서 스스로를 사랑하란 말을 그토록 큰 목소리로 떠들다니 이거야말로 사기의 전형 아닐까?

 

누가 신고하면 어쩌지, 자수해야 하나.

 

ps: 대통령이 누구냐는 질문이 너무 무례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 역시도 노무사 되기 전 모든 걸 저주만 하고 지낼 땐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몰랐다. 요양원에서 알고 지낸 원생들도 다수가 마찬가지였다. 대단히 냉혹하지만 세상에 등 돌린 자를 파악하는 가장 효과적인 질문이 바로 이것이기에 어쩔 수 없이 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도 세상엔 많은데 이게 왜 나는 슬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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