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이맘때 일이다.
학교에서 축제를 하는데 난 데려갈 여자친구가 없었다.
어떻게든 만들고 싶기에 대학로로 헌팅을 나간다.
하지만 꼬박 4일간 하루 5시간씩 헤매며 여자들에게 말을 걸었어도 모두가 날 거부할 뿐이었다.
나가기 전에도 대충 짐작은 했다.
난 구순구개열이란 얼굴기형을 가졌기에 모든 여자가 비선호할 거란 걸.
그래서 여친에 대한 기대를 1학년 때부터 접고 살았건만 군대 다녀온 어떤 선배의 요설饒舌에 넘어가 이 미친 짓을 하고 만다.
이 선배 왈, 의지만 있으면 못 할 게 없으며 아무리 기형이라도 이것까지 사랑해 줄 여자가 어딘가엔 있을 텐데 가만히만 있다가 청춘 다 보내면 너무 억울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그렇기에 너무 부끄러워 말까지 더듬으면서도 나는 헌팅을 아주 용감하게 시도했다.
원래는 일주일간 하려 했지만 4일째 되는 날의 어스름한 저녁에 말을 붙인 여자 덕(?)에 중간 스톱을 했다.
이 여자가 그랬다.
여자도 남자 얼굴 보며 나 같은 기형은 판검사나 돈 무지 많은 부자라도 여자에게 어필하기 힘들 거라고.
대단히 미안하지만 괜한 수고하는 것 같아서 알려주는 거라고.
이 말을 마지막으로 갈 길 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며 난 생각했다.
적은 확률에 어설프게 도전하면 상처만 남겠다고.
그리고 새삼 떠올려보니 나에게 용기(?)를 불어 넣은 선배는 아주 미남이었다.
기형인의 삶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할 이런 자의 말을 따른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그 후론 지금까지 수십 년간 섣불리 용기나 희망 운운하는 말은 절대 안 들으며 이 말 함부로 입에 올리는 자와는 최대한 빨리 연을 끊곤 한다.
딱 한 번 예외가 있었는데 그건 노무사 시험 도전이었다.
이미 중년을 훌쩍 넘은 나이라 다수가 힘들 거라 봤고 나 또한 그리 여겼지만 구순구개열을 준 것에 대한 미안함에서라도 신이 한 번 정도는 나에게 뭔가 선물을 할 거란 망상을 하며 시도한 것이다.
근데 단 한 번에 손쉽게 붙는 일은 결코 생기지 않았다.
머리가 다 빠지고 목 디스크가 생길 정도의 노력을 하고서야 라이센스는 내 손에 쥐어졌다.
집 근처에 새로 김밥집이 생겼다.
인테리어는 깔쫌한데 가격이 좀 그렇다.
수도권이지만 시골에 가까운 이 동네 물가를 고려하면 한 줄에 4천 원은 아닌 듯하다.
게다가 이 집에서 50미터 정도만 가면 이미 다른 김밥집이 성황리에 운영 중이다.
이 집은 한 줄에 2500원이니 자연히 새 집이 단가면에선 불리하다.
유기농 재료만 사용한다는 걸 크게 써 붙여 가격에 대한 반감을 누그려뜨리려는 것 같던데 시골 사람들에게 과연 먹힐까?
시험, 사업, 연애, 직장생활 등에서 적은 확률에 목숨을 거는 자들이 요즘 부쩍 는 것 같다.
주식이나 부동산, 코인 혹은 국가고시에 올인 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다들 그런다.
자신만은 좁은 문을 뚫을 수 있다고.
전술한 헌팅을 포기하고 돌아올 때의 내 마음은 지금 돌이켜봐도 생생히 느껴질 정도로 대단히 서럽고 아팠다.
이걸 일단 느끼고 나면 다시는 적은 확률에 도전할 생각조차 안 하는 게 보통이다.
아픔에 대해선 고려 안 하고 의욕만 보이는 자들을 용감하다고 칭찬해야 할지, 어리석다고 비난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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