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찾아와서 정말 미안한데 지난 연말에 우리 신랑이 회사를 그만뒀어. 애들이 아직 고등학생이라 돈이 많이 들기에 이번에 내가 보험설계 일을 시작했거든. 너네 남편 잘 나간다는 소문이 동창들 사이에 파다하기에 면목 없지만 찾아와봤다. 보험 하나만 들어주면 안 될까?”
“그랬구나. 남편은 어쩌다 그만둔 거야? 해고? 사직?”
“해고라나 봐. 회사가 어렵대”
“요즘 안 어려운 회사가 어디 있어? 근데 너 라스베이거스 가봤니? 얼마 전에 우리 온 가족이 같이 갔었는데 진짜 좋더라. 도박 안 해도 호텔비 무지 싸게 해줘. 너도 꼭 가봐. 내가 호텔 연락처 줄 테니”
“나중에 여건 되면 갈게. 근데 보험은....”
“여보, 그때 우리 라스베이거스에서 찍은 사진들 당신 핸드폰에 있지? 이리 좀 줘 봐. 직접 가기 힘들면 이거라도 꼭 봐봐. 정말 끝내줘”
“내가 지금 애들 올 시간이라 보험계약만 마치면 바로 집에 가야 하는데”
“뭘 그리 바쁘게 사니? 그건 그렇고 영미(가명) 애 아프다는 말 들었어?”
“응. 백혈병이라던데 정말 안 됐더라”
“학교 다닐 땐, 지가 제일 잘난 줄 알고 그렇게 고개 빳빳이 세우고 살더니 하늘이 벌 준 거야. 솔직히 그 소식 듣고 난 무지 고소하더라”
“그래도 애가 아픈데....”
“아참, 그러고 보니 학교 때 너랑 영미랑 친했지? 그래서 이렇게 감싸주는 거니?”
“아냐, 그런 거. 근데 민정(가명)아, 보험 좀 지금 계약 안 될까?”
“네가 그토록 아끼는 영미에게 들어달라고 해”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내가 잘못했어. 영미 애가 병 걸린 건 다 네 말이 맞아. 그러니 제발 좀 부탁해”
“생각 좀 해볼 테니 날씨 따뜻해지면 다시 와라. 요즘 날씨는 왜 이리 추운지. 너네 아파트는 난방 잘 돼?”
“네가 보험 들어준다고 해서 3번이나 버스 갈아타고 왔어. 그런데 다시 오라고 하면 난 어쩌니”
“네가 아직 영업이 뭔지 모르는 구나. 여보, 우리 회사 영업사원들에게 보여주는 그 유투브 주소 좀 줘 봐. 야~~~ 이 유튜브 주소 들어가서 이거 가지고 공부부터 해라. 넌 영업의 기초부터 배워야 해. 근데 학교 땐 영미랑 너랑 공부 잘한다고 그렇게 날 업신여기더니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호호호”
픽션이 아니라 내가 오늘 모 회사 사장실에서 직접 본 넌픽션이다.
사장과 대화 중에 이 사장의 아내가 들어왔고 잠시 같이 환담을 나누고 있는데 어떤 여자가 쭈뼛거리며 들어온다.
알고 보니 사장 아내의 동창인데 전술한 대로 보험을 팔러 온 것이다.
하지만 이 사장 아내는 끝까지 안 들어주며 계속 애만 태웠고 결국 이 여자는 울음까지 터뜨리고 나가버렸다.
나갈 때 이 여자의 눈빛은 장난 아니었다.
이 눈빛만 보면 그 어떤 사악한 행위이라도 할 것 같던데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법.
도움을 요청하러 온 친구를 이렇게 가지고 놀며 가학적 쾌감을 충족시키는 자들을 종종 본다.
학창 시절의 열등감 등이 원인인 듯 한데 둘만 있을 때 해도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를 굳이 다른 사람도 동석한 자리에서 하게하고 끝끝내 들어주지 않으면서 희망고문만 하는 게 이들의 18번으로 보였다.
이 사장 아내에게 당한 여자가 복수를 할 경우, 전후 사정을 모르는 세상은 이 여자만 욕할 것이다.
하지만 이 복수사건을 맡을 판검사가 오늘 이 자리에 있었다면 설사 살인이라 할지라도 이 여자에게 가능한 유리하게 판단하려 노력하리라 난 장담할 수 있다.
원수를 만드는 습벽을 고치라는 강의는 왜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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