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집 근처 #시립도서관에 잠시 들렸다.
급하게 빌릴 책이 있기 때문이다.
시립도서관 사용자는 크게 4가지 부류로 나뉜다.
고시 등 시험 준비 중인 성인, 백수인데 갈 곳이 없어서 온 성인, 학생, 주부.
첫 번째 부류는 보통 도서관 문 열자마자 들어와서 열람실을 차지한다. 나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다수지만 불행히도 합격률은 높지 않다. 신림동이나 노량진 등에서 제대로 준비하는 수험생과 겨루기에는 학원 지원이 전무한 탓이다. 인강은 아무래도 실강보다 못하다.
그래도 첫 번째 부류는 뭔가 꿈을 향해 달려간다는 점에서 두 번째 부류보다는 훨씬 낫다. 과거의 내가 두 번째 부류에 속했다. 백수라 할 일도 없지만 집에만 있으면 눈치가 보여서 나오긴 했는데 돈도 없고 갈 곳도 없기에 기껏 온 곳이 도서관이다. 이들은 열람실이 아닌 종합자료실이나 정기간행물실에서 책이나 잡지를 주로 보지만 삶 자체가 너무 불안정하기에 집중을 잘 못한다. 자주 두리번거리고 타인이 이 시간에 여기 와있는 자신을 어찌 생각할지에 대해 매우 민감하다. 특히 첫 번째 부류였다가 여러 차례의 좌절을 겪고 두 번째 부류로 전락한 자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우습게 본다고 오해하고 자주 싸움을 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자격지심 탓이다.
종합자료실에서 관련 책자를 빌리고 출근을 위해 서둘러 나오는데 누군가가 담배 한 까치만 줄 수 없냐고 말을 건다. 담배 안 피운다며 외면하려는데 목소리가 귀에 익다. 돌아서가는 얼굴을 조심스레 보니 10여 년 전 내가 백수 시절에 같이 몇 번 담배를 피우고 라면을 먹었던 사람이다. 당시 하던 사업이 망해서 새로운 진로를 찾는 중이라고 했는데 왜 아직도 여기에 있는 걸까? 흰머리도 많이 늘었고 얼굴에 주름이 완연하다.
담뱃값이라도 쥐여주려다가 말았다. 자존심이 유난히 강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냥 도망치듯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나의 10여 년 전 모습을 타인을 통해 다시 보니 섬찟하다.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 시간이 지난다고 모든 것이 추억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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