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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마

가장 인상 깊지만 가장 나를 슬프게 하는 영화: 파라다이스

by 강명주 노무사 2022. 8. 28.

"강 노무사,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가 뭐야?"​

"갑자기 그건 왜 물어?“​

“비도 오고 그냥 울적해서”​

“파라다이스”​

“야동이야?”​

“피비 캐츠 나온 파라다이스도 몰라?”​

“레벨 있는 영환가?”​

“레벨은 솔직히 낮지. 피비 캐츠라는 아이돌이 누드씬 살짝 보여준다고 해서 화제가 됐을 뿐이야”​

“근데 왜 인상 깊어?”​

“대충 줄거리가 20세기 초에 아라비아 반도를 낙타로 횡단하던 선진국 사람들이 산적의 공격으로 어른들은 다 죽고 청소년인 피비 캐츠랑 또래 남자애만 살아남은 뒤, 이들이 길을 잃고 헤매다가 성에 눈을 떠서 결국 남자애가 피비 캐츠를 임신시키고 피비 캐츠를 노리고 추적해온 산적의 두목을 처치한 후 다시금 문명세계로 돌아간다는 내용이야”​

“대단히 상투적인데 그게 뭐?”​

“맨 마지막에 보면 문명 세계를 찾아 헤매던 이 커플이 드디어 저 멀리 큰 도시가 있는 걸 발견하고 기뻐하는데 이 도시로 가려면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바닷가를 한참 걸어가야 하고 이 모든 장면을 로마로 추측되는 고대 유적의 거대한 문 사이로 촬영을 하지”​

“그래서?”​

“저 머나먼 도시를 향해 피비 캐츠와 남자애가 손을 잡고 뛰어가고 동시에 영화 주제가가 나오면서 3~4분 가량 이들이 멀리멀리 가는 걸 롱테이크로 잡으며 영화는 끝나”​

“그래서 어쨌다고?”​

“최 사장, 내가 더 이상 말하기 힘들다. 그냥 오늘은 먼저 일어날게. 술값은 내가 낼 테니 최 사장은 더 먹다가 편할 때 돌아가”​

“강 노무사, 영화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왜 그래? 뭔 일 있어?”​

아까 오전에 같이 낮술 하던 지인과의 대화.​

이 마지막 장면을 나는 수십 번 보았다. 그리고 늘 그때마다 소주를 쥐고 있었다.​

처음 이 장면을 본 게 대학교 4학년 때이다.​

그 유명한 피비 캐츠의 아름다움은 그닥 눈에 안 들어오고 마지막에 둘이 바닷가를 오래도록 손을 잡고 달리는 장면이 왜 그리 부러웠고 인상적이었는지 모르겠다.​

당시에도 나는 실질적으로 혼자였기에 내 손을 잡고 같이 달려줄 피비 캐츠 같은 존재를 간절히 바랐나 보다.​

그때도 술이 약했지만 혼자 깡소주를 마시며 기대하고 또 기대했다.​

조금 더 힘을 내서 졸업을 하면 괜찮은 곳에 취직할 것이고 그럼 나에게도 영원히 옆에 있어줄 누군가가 생길 거라고.​

하지만 졸업을 불과 3달 앞두고 말도 안 되는 사고가 날 덮쳤고 그날 이후 완전히 삶이 몰락하여 지금까지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100프로 복구는 안 되고 있다.​

사고로 인해 한창 몸이 안 좋을 때는 모두가 등을 돌릴 정도로 심각해서, 나 스스로도 어떻게든 세상으로부터 숨으려 필사적인 노력을 했다.​

이러면서 몇 년이 흘렀고 대학교 4학년 때의 전술한 내 기대는 다시 돌아보는 게 고통스러울 정도로 처참히 깨져버린다.​

사고 후 10여 년이 흐른 어느 날, 겨우 좋아진 몸을 가지고 노가다를 하다가 전술한 마지막 장면을 우연히 다시 보았다.​

땅을 파고 있었는데 바로 옆 비디오 가게 문틈을 통해서였다.​

난 나도 모르게 곡괭이를 떨어뜨렸고, 어디 가냐는 소장의 말에 답도 안 한 채 가장 가까운 술집에 바로 들어가 알콜중독자 마냥 숨도 쉬지 않고 술을 들이키며 모든 걸 잊으려 애썼다.​

그 후 다시 몇 년이 흘렀고 어찌어찌 노무사가 되었지만 내가 바라던 인생궤도와는 너무 거리가 멀다. ​ ​ ​

노무사가 된 뒤로도 가끔은 유튜브에 있는 전술한 장면을 종종 보며 그 사고만 없었다면 내 인생이 어찌되었을지 상상하고 또 상상한다. 이때도 늘 소주는 내 옆을 지키고 있다.​

이 모든 이야기를 전술한 최 사장에겐 도저히 할 수 없었다.​

파라다이스가 아닌 다른 영화 운운하며 대충 거짓말을 했어야 했는데 너무 솔직했던 게 탈이다.​

비가 온다.​

내 사고가 나던 그날도 비가 왔다.​

냉정히 말해, 내 손을 잡고 같이 달려줄 사람은 내 구순구개열(언청이)을 감안하면 사고가 없었어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 ​ ​ ​

이런 합리화를 통해 조금이라도 ​ 평화를 찾으려 하나 이 생각은 이 생각대로 또 다른 차원의 우울함을 가져온다.

이이제이以夷制夷의 한계?​

팔자가 전혀 허락 안 하는, 내 외로움을 달래줄 누군가가 나타나길 바랐던 내가 너무 어리석었다. ​ ​ ​

ps: 내가 죽는 마지막 순간에 주위에 누가 있다면 나는 전술한 장면을 꼭 틀어달라고 할 것이다. 이걸 보며 죽으면 조금은 덜 외롭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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