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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톨이(외로움),솔로,노화

사장 중에도 나 같은 겁쟁이가 너무 많다(소설 이방인)

by 강명주 노무사 2022. 7. 4.

‘알베르 까뮈’의 권위자인 불문학자 #김화영 교수의 에세이 중에는 출판사 관계자와 저자(번역가)가 식사라도 같이하며 견해를 나누는 풍토가 점차 사라지고 냉랭히 원고와 인세만 주고받는 요즘 세태를 안타까워하는 내용의 것이 있다.

“제가 입금을 안 한다면 우리 관계는 끝이겠죠?”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 사장으로부터 매달 일정액을 받으며 자문을 해주곤 한다. 일단 서로 만나서 수요와 공급을 확인하고 자문계약을 맺은 뒤, 관련 일을 해주는 것이 보통이겠지만 나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전화 연락만으로 자문계약을 맺고 팩스나 이메일, 전화 등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며 직접적인 만남은 전혀 갖지 않는 자문사를 몇 개 가지고 있다.

지인의 소개나 내 글을 보고 전화가 오고 그 전화에서 서로 간 호감을 느낀 뒤 팩스를 통해 자문계약서에 사인을 받음으로써 시작되며 질문이 없어도 노동이슈 등이 있을 때에는 내가 먼저 관련 글을 보내거나 전화를 한다.

자주 통화를 하다보면 얼굴은 본 적이 없지만 가족 못지않은 친근감이 느껴지고 이런 상태가 지속되다 보면 내가 쏠 테니 만나서 밥이나 먹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기도 한다.

하지만 딱 한 번 실행했던 이 제안을 당시 상대방인 사장은 너무나 당혹스럽게 받아들였다.

서비스제공과 입금이라는 수요와 공급이 이미 충분히 일치된 상태에서 왜 만나서 같이 밥을 먹어야 하냐고 그는 물었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까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인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이나 애인과의 애정행각, 직장동료와의 대화 등 인생 모든 것이 그저 허무하게만 느껴졌고 결국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라는 부조리한 이유를 대며 아랍인을 총으로 살해한다.

목소리만 아는 사장들의 고민을 듣고 그에 대한 해답을 내 전문분야 뿐만 아니라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것을 동원하여 찾은 뒤, 밤새 보고서 형식으로 정리하여 이메일로 보내고 나면 보통은 아침이다.

김화영 교수는 출판사 관계자들과 같이 먹던 도가니탕을 그리워하는 모양인데 나는 술은 거의 못하지만 해장국이 그립다.

전화통화만 하던 사장들을 아침 일찍 만나서 해장국이라도 먹으며 고민을 함께해주고 싶지만 고독이 물씬 풍기는 현재 방식의 자문을 오히려 대다수는 선호하는 듯하다.

누군가가 그랬다.

정보통신기기의 발달이 인간을 더욱 쓸쓸하게 만든 것 같다고.

전술한 질문은 모 술 취한 사장이 집에 가는 택시 안에서 전화를 통해 나에게 한 것이다.

얼굴은 본 적 없지만 이미 충분히 오랜 세월 자문을 해왔기에 어느 정도의 기간은 자문비 없이도 얼마든지 자문이 가능하지만 선뜻 이 말이 입밖에 나오지 않았다.

대가없는 서비스 제공을 꺼려서가 아니라 그렇지 않아도 외로운 내 마음이 이런 관계를 자꾸 허락하면 더 약해질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외로움을 인정하는 순간, 약해 보이기 시작하고 이를 캐치한 하이에나들이 바로 몰려든다는 문장을 어딘가에서 읽은 적이 있다.

강 노무사의 이메일을 받으면 어떤 내용일지 기대가 너무 커서 제목만 봐도 무척 행복하다는 말을 모 사장이 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더 없는 칭찬인데 이런 이메일을 통해 쌓은 나에 대한 이미지를 훼손하고 싶지 않아서 만나는 것은 꺼려진다는 말도 덧붙였다.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아픔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누군가도 만날 수 있을텐데 세상에는 겁쟁이가 너무 많다. 나를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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