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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톨이(외로움),솔로,노화

내 품으로 파고드는 새끼 고양이조차 거부하는 심정

by 강명주 노무사 2022. 6. 27.

비가 오락가락하는 새벽 1시, 운동을 나섰다.

여느 때와 같은 코스를 돌고 있는데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어차피 들고양이가 많은 동네라 무시하려했지만 너무 애처롭다.

멈춰서 어디서 나는 소리인가 찾아보니 건물과 건물사이의 버려진 통로에서 난다.

다가가서 인기척을 내보니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기어 나온다.

비를 쫄딱 맞은 채 겁도 없이 나에게 바로 온다.

들고양이들은 통상 겁이 많고 거칠기에 함부로 가까이 하면 안 된다고 알고 있고 그 탓인지 매우 당황스럽다.

주춤주춤 물러나는데 내 다리에 엉겨 붙는다.

나도 모르게 주저앉으니 내 품으로 파고든다.

따뜻한 체온이 무척이나 기분 좋다.

그러고 보니 생명체의 체온을 느껴보는 게 너무 오랫만이다.

품에 안은 채 근처 편의점에 가서 우유를 한 병 샀다.

우유뚜껑에 따라줬지만 너무 어린지 제대로 못 먹는다.

손가락에 묻혀서 입에 넣어주니 열심히 빨아먹는다.

이렇게 조금 먹이다가 버려진 라면용기에 우유를 다 따라서 원래 있던 장소에 가져다 두었다.

고양이도 우유그릇 바로 앞에 내려놓고 돌아섰다.

키우고 싶었지만 혼자인 내 상황을 생각하니 자신이 없었다.

내려놓는 순간부터 다시금 구슬피 우는데 냉정히 무시하고 내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40여 분 뒤, 운동을 거의 마치고 고양이가 있던 장소를 다시 지나치는데 어떤 청년이 주저앉아 있다.

자세히 보니 아까 그 새끼고양이를 품에 안고 달래는 중이다.

옆에 서서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잠시 뒤 고양이를 안은 채 어디론가 사라진다.

혼자인 나보다야 좋은 주인을 만났을 테니 더 잘됐다는 생각과 함께 아까 내 품에 파고들 때 왜 그냥 집에 데려가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떠나가는 청년을 쫓아가서 좀 전에 내가 먼저 보았고 우유도 사줬으니 내가 데려가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는 욕구도 생겼지만 사람 꼴만 우스워 보일 듯하여 멍청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항상 이런 식이다.

조금만 용기를 내고 적극성을 보인다면 상황이 급변할 수 있는데....

추리소설의 여왕인 애가사 크리스티 여사가 창조한 주인공 중에 새터스에이트라는 인물이 있다. 탐정은 아니고 제3자로서 사건의 관찰과 기술을 주로 담당하며 때로는 <셜록홈즈>에 나오는 왓슨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젊어서 기자직을 오래한 탓에 타인을 관찰하고 잠재된 갈등을 캐치하는 일에는 능숙하지만 숙명적으로 본인은 절대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기억난다.

고딩 시절, 이 부분을 읽으며 어째 내 인생도 비슷하게 흘러갈 것 같았는데 정말 현실이 되었다.

설령 다소 추접고 피곤하더라도 진흙탕 싸움도 마다하지 않을 때 연은 맺어질 텐데....

이 나이되도록 혼자 살며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접하다보니 공통점이 보인다.

은근히 다들 겁이 많다.

학력, 경력, 재력 이런 것들을 모두 떠나서 그냥 성격 자체가 좋게 말하면 너무 깨끗하고 나쁘게 말하며 조금의 오점이나 갈등도 견디질 못한다.

그러다보니 인간관계, 특히 남녀관계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결국 솔로의 길을 걷게 된다.

나 같은 경우는 여기에 선천성 기형도 덧붙여졌지만 여하튼 나 역시 마음이 아주 약하다는 걸 인정 안할 수 없다.

일단 저지르고 변한 상황에 삶을 맞추는 기백도 어느 정도는 인생에 꼭 필요할텐데....

알면 뭐하나. 실천을 못하는 바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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