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모택동 시절, 총리이자 2인자였던 주은래는 중국을 방문한 외국 정상과의 만찬이 있으면 항상 미리 주방에 찾아가 국수를 한 그릇 청한 뒤, 이를 먹고 만찬에 임했다고 한다.
만찬에서 외국 원수에게 성심성의껏 맞춰주기 위해 이랬다는 해석이 인터넷에는 많으나 인민들의 피와 땀으로 제공되는 비싼 식사를 조금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그랬다는 평가도 있다.
모 소상공인이 직원들 회식을 시켜주며 속이 안 좋다는 이유로 고기를 거의 안 먹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회식을 마치고 지하철역으로 가다가 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들렀는데 이 사장이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멋쩍게 웃으며 회식비 좀 줄이고자 그랬다고 했다.
폼이 나야 손님들이 찾아온다며 사무실 인테리어부터 가구, 사무용품, 식비까지 돈을 펑펑 쓰고 나중에는 사채까지 함부로 손을 대는 사장도 적지 않다.
내 주관이겠지만 생존 확률에서는 컵라면으로 배를 채운 사장이 후자의 사장보다 월등한 듯하다. 임금체불로 신고당하거나 사기죄로 형사처벌까지 받는 후자의 사장들도 많이 보았다.
젊어서 모 요양원에 있을 때, 지원금이 끊긴 적이 있다. 몇 푼 안 되지만 이 돈으로 나처럼 거동이 힘든 사람들이 연명할 수 있었는데 그 지원이 중단된 것이다.
당장 먹을 게 없기에 근처 농가에서 버리는 쌀(보통 싸래기라고 한다. 닭이나 돼지의 모이로 주로 쓰인다)을 얻어 오고 마찬가지로 버리는 배추에 소금과 고춧가루만 뿌려서 김치를 담근 뒤, 상당기간을 이것들로 연명한 적이 있다.
비참함의 극을 달렸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는 의지가 강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요즘은 그럭저럭 수입이 있기에 어느 정도는 편하게 살 수 있지만 싸래기과 버려진 배춧잎의 추억 탓인지 절약이 몸에 뵈었다.
궁상 좀 그만 떨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완전히 혼자인 경험을 상당시간 하고 나니 좀처럼 여유가 안 생긴다.
나에게 여유를 가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만약 내가 과거처럼 거동조차 못하게 되어 부탁을 하면 내 수발을 들어줄까? 아니, 조금의 신경이라도 써줄까?
2차 대전 당시, 부모와 형제를 폭격으로 잃고 고아원에 수용되었던 아이들의 그후 삶을 추적한 작가가 있었다. 불행히도 대다수가 사회부적응자가 되었는데 무엇보다 제대로 된 가정을 꾸리는데 성공한 아이들이 매우 적었다.
이들 다수는 고아원에서의 경험 탓에 항상 사회와 사람들을 사시를 뜨고 보는 버릇이 몸에 뵈었고 이렇게 우울한 자신들을 받아줄 사람은 없을 거라고 했다.
내가 로또라도 당첨되어 떼부자가 된다면 지금의 궁상과 그늘에서 벗어나 밝고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함부로 미래를 점칠 수는 없겠지만 당시 느낀 공포는 그 어떤 돈으로도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절대 잊고 싶지 않다.
이제는 내 삶의 원동력이자 영원한 친구가 되었기에 이 친구가 날 떠나려 해도 기필코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한 번 드라큘라는 영원한 드라큘라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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