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산에 갔다가 또 #들개를 만났다.
이번엔 한 마리였는데 일정한 거리를 두고 계속 따라왔다.
약 1시간 가량 이 개를 달고 산을 내려오며 오만 생각을 다했다.
혹시 뒤에서 달려들면 어떻게 방어를 할지....
만화 <미스터 키튼>에서 본 들개 퇴치법이 과연 가능할지....
출혈을 하게 된다면 산을 내려와 병원에 갈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광견병 예방주사가 아프다던데 그것도 맞아야할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근육이 경직되어 나중에는 발을 디디기도 힘들었다.
그러다 이렇게 죽으면 많이 후회스러울 지에 대해서도 생각이 미쳤다.
세상에 정말 하고픈 이야기를 담은 책을 냈고, 빚은 없기에 피해 입을 채권자는 없으며, 무엇보다 나는 많이 당하고 살았지만 악하게 군 적은 거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자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항상 내 이익보다는 타인을 배려했고 은혜는 어떻게든 갚으려 노력했으며 설사 응징을 하더라도 내가 당한 거 이상으로 하지는 않았기에 저승 가서도 이런 점들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랑을 받고만 산 사람보다는 짝사랑일망정 많이 줬던 사람이 죽을 때는 마음이 더 편하다는 말을 어떤 책에서 보고 개소리로 치부했는데 오늘처럼 죽음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단계에 접어들자 진짜로 마음이 편해지며 이 말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죽음이 두렵지만은 않았고 여전히 나를 따라오는 들개를 조금은 다른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이런 나의 변화를 감지한 탓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호기심으로 따라왔는지 산어귀에 다다른 나에게 이 개는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가로등 밑에서 같이 놀다가 이제 나는 가야한다며 돌아가라고 하자 다소 아쉬운 듯 안 올라가더니 내가 멀어지자 산으로 들어간다.
모든 복수를 못하고 죽으면 억울해서 눈이 안 감길 것 같았는데 누구에게도 내가 원수가 아니란 사실만으로 이 같은 평화를 누리게 될 줄 상상이나 했으랴.
'다양한 감정,슬픈 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쫄딱 망한 사람에게 쌍욕을 했다 (0) | 2022.06.19 |
---|---|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이나 하고 대충 살까? (0) | 2022.06.14 |
퇴근길 예쁜 노을 탓에 눈물까지 흘렸다 (0) | 2022.06.02 |
그리움이란 감정을 나도 알고는 싶다 (0) | 2022.05.24 |
이 길을 가면 안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발이 (0) | 2022.05.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