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의 일부 글을 보고 누가 그랬다.
엄청 재밌다고.
근데 이곳의 다른 우울한 글들과는 너무 달라보여서 #동일인이 썼는지 의심스럽단다.
원래 난 웃음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웃을 일이 거의 없는 삶을 살았고 웃음은 약자의 마지막 생존수단이라고만 여겼기에 그렇다.
그러다 요양원에서 미치지 않으려고 일부러 웃을 거리를 찾아다녔고 결국 요즘처럼 흰소리도 종종 하는 사람으로 변해버린다.
요양원에서 가장 비참한 자는 질환이 악화되어 마침내 사망하거나 현실을 못 견디고 자살하는 자가 아니었다.
절망에 빠져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머리가 돌아버린 자가 최악이었다.
사고로 다리를 하나 잃고 요양원에 들어온 뒤, 과거의 남친을 그리워하다가 미친 여자를 본 적이 있다.
남친이 마을 어귀에서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며 한밤중에도 목발을 집고 뛰쳐나갔고 보이지도 않는 남친을 봤다며 어서 데려와 달라는 말도 자주 했다.
군대에서 자신을 때리던 상사들이 이 요양원까지 따라왔다는 말을 하여 사람들을 긴장시킨 청년도 있었는데 이 사람도 결국 망상에 사로잡힌 상태였고 상사와 비슷한 체형의 다른 사람을 상사라 여기고 몽둥이로 패는 일까지 벌이고 만다.
지금은 모르지만 당시엔 이 정도 되는 사람들은 정신병원에 쉽게 수감되었다.
요양원 전체의 질서를 위해 누군가가 유관기관에 도움을 요청했고 전술한 여자와 청년 모두 어느 햇살 좋은 봄날, 앰뷸런스에 강제로 태워져 사라졌다.
난 이들을 보며 맹세했다.
죽을지언정 절대 미치진 않겠다고.
그리고 그 수단으로 유머를 선택한다.
지나가는 아이들의 우스꽝스런 모습.
마을 늙은 부부의 티격태격하는 대화.
빤히 속이 들여다보이는 행상들의 립서비스
이런 것처럼 조금이라도 재밌는 건 메모를 했고 이를 소재로 짧은 꽁트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대학 졸업 때까지 이룬 모든 걸 사고 한 방으로 다 잃고 20대에 머리가 다 흴 정도로 페인이 된 상태였지만 이 꽁트들 덕에 결국 나는 온전한 정신을 유지한다.
요즘 내가 쓰는 흰소리들도 어쩌면 여전히 미치지 않으려는 최후의 발악인지도 모른다.
지금이라 해서 당시와 비교해 엄청 상황이 좋아진 것도 아니고 여전히 사과 한 마디 없이 떵떵 거리고 잘 사는 가해자들을 보면 당장이라도 돌아버릴 것 같지만 이런 흰소리들을 끼적이는 순간만은 나도 모르게 분노는 잊혀지고 평화가 찾아온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이 말엔 참 많은 뜻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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