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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사 등 각종 시험

장수생 되면 가장 안 좋은 점(feat: 노무사 1차 시험)

by 강명주 노무사 2023. 5. 27.

#국가고시든, 수능이든, 각종 기술시험이든 장수생 중엔 강사에 대한 평가질을 즐기는 인간들이 꽤 된다.

강사가 알려주는 걸 하나라도 더 이해하고 암기하려 노력하는 게 아니리 말투, 지식, 성실성 등을 평가하는데 주안점을 두며 이를 정리하여 인터넷에 올리기도 한다.

자신이 해야 할 공부를 모두 다 하면서 이런다면 교육이란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의 정당한 행동이라 볼 여지도 있지만 이들 대다수는 공부는 대단히 등한시한다는 특징을 지녔다.

장수생이 되면 지식이 쌓인다.

합격은 못 했으나 얼추 뼈대는 머릿속에 들어온 상태이고 그러다 보니 강사가 만만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강사에게 시험과는 하등의 관계없는 질문을 하는 등 현학적인 싸움을 걸기도 하며 이에 대해 강사가 무시하거나 당황하면 본인의 우월함을 증명했다고 여기며 자아도취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들 모든 짓거리가 합격은 하고픈데 공부는 하기 싫어서 나오는 미친 짓이란 걸 장수생 본인 말고는 모두가 알건만 본인들은 절대 인정 안 하는 게 보통이다.

결국 이러면서 허송세월하다 보면 시험날은 또 다가오고, 이번만은 꼭 붙을 거란 자신감을 보이며 붙자마자 과거에 싸웠던 강사를 반드시 찾아가 자랑을 할 거라는 김칫국부터 마시는 장수생도 상당하다.

공부는 안 했으면서도 나오는 이 자신감은 하도 수험판에 오래 있다 보니 대다수 주요 이슈는 다 섭렵했다는 사실에 기인하는데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공부한 게 없기에 시험장에선 늘 어버버에 그친다는 점이 그저 안타까움을 배가시킨다.

또 불합격 통지를 받아들면 이젠 차원이 다른 생각을 한다.

시험 제도 자체가 문제라고.

실무와 무관한 과목들이 많다느니, 시험 시간이 자기처럼 공부 많이 한 자가 모든 걸 현출하기엔 부족하다느니, 첨단 it 세상에서 수기로 답안을 작성하는 건 말도 안 된다느니, 출제위원들이 현실을 모른다느니 하며 자신이 아닌 다른 요소들에서 자꾸 불합격의 요인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이미 수험판에서 수 년 이상을 날렸고 자존감은 바닥이며 친구들은 다 제 갈 길 갔고 가족들로부터도 제대로 된 취급을 못 받는다는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나오는 이 도피는 손가락 자르고도 또 도박장을 찾아왔다 다 잃은 도박쟁이의 말로를 연상시킬 따름이다.

이 꼴 안 되려면 길은 두 가지 뿐이다.

엄청 연하의 강사에게도 고개 숙여가며 하나라도 더 배우는 등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공부를 하여 합격하거나 과감히 시험 포기 선언을 하고 다른 길을 가거나.

불행히도 대다수 장수생은 기존 투자한 시간이 아깝고 다른 곳에 가서 새로 시작할 용기가 없기에 후자의 길은 선택 못 하면서도 정작 열심히는 하지 않는다는 최악을 선택을 하고 만다.

인간이 어디까지 비열하고 비참해질 수 있는지 장수생만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또 있을까.

ps: 신경도 안 쓰고 있었는데 오늘이 노무사 1차 시험날이란다. 오전에 시험 치고 온 친구 녀석이 소주를 두 병이나 원샷하고 전화를 했다. 예년보다 너무 어려워서 1차 낙방이 이미 확정되었다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노무사 제도는 없애 버려야 한단다. 이 친구는 이미 6년째 수험판에 있다. 뒤치다꺼리 하는 제수씨 얼굴에 주름이 무지 늘었다. 이 부부를 생각하고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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