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노무사, 혹시 요즘 김 이사 만나?"
"그런데 왜?"
"그 양반이 사업한다며 강 노무사에게 손 벌리지 않았어?"
"뭐 그랬지"
"돈 빌려줬지?"
"그냥 좀"
"그리고 못 받았지?"
"근데 왜 자꾸 물어?"
"그 인간 그러는 게 사기란 걸 당신도 잘 알 텐데 왜 자꾸 가까이 하는지 너무 궁금해서 그래"
"그래도 사람은 좋아"
"개뿔, 그 인간이 당신에 대해 그런 호구 본 적 없다며 떠들고 다닌다는 걸 꼭 내 입으로 말해줘야 해?"
"...."
"그 인간 사기 치다 교도소까지 갔다 온 걸 강 노무사 당신도 잘 알면서 왜 자꾸 어울리는지 말 좀 해봐. 누구보다 불법을 싫어하면서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난 결국 마지막 질문에 답을 못하고 도망쳐 나왔다.
이 사람 말대로 김 이사란 작자가 날 벗겨먹으려 한다는 걸 너무 잘 안다.
그럼에도 이 자를 가까이 하고 내가 안 망할 만큼 자청해서 사기당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난 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어릴 때부터 이 생각은 나를 사로잡았다.
누구도 내 옆에 없고, 누구도 날 사랑 안 하고, 누구도 나에게 관심을 안 갖던 당시의 시린 환경을 온몸으로 실감하며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내가 뭔가 아주 큰 잘못을 했고 그래서 벌을 받고 있다고.
물론 실제로 내가 잘못한 건 없다.
이틀을 굶고도 길바닥에 떨어진 동전지갑을 고스란히 파출소에 가져다 줄 정도로 고지식했으니.
그래도 이래야 당시 처지를 합리화(?) 시킬 수 있었기에 이 습관은 계속되고 날 적당히 괴롭히는 자를 가까이 해야 마음이 편한 지경에 이른다.
그렇다고 늘 채찍만 요구하는 건 아니다.
나도 사람이기에 관심과 사랑 역시 원한다.
전술한 어린 시절의 나는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다는 생각도 했다.
그 다른 나는 사랑을 받아 마땅하고, 겉으로 보이는 나는 벌을 받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양분했다.
겉으로 보이는 나는 구순구개열(언청이)에 눈도 잘 안 보이는 괴물이지만 내 안의 다른 나는 아주 이쁘고 잘생기고 사랑받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 여긴 것이다.
나를 냉대하는 자들은 내 겉모습만 보기에 당연히 그럴 것이며 내 안의 진짜 나를 감지한 자는 나를 사랑하리란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인식하는 자는 전혀 없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인지하는 누군가가 나타나리라 기다리고 또 기다렸고 그렇게 수십 년이 흘러 오늘에 이른다.
이렇게 살다보니 누군가를 만나면 두 가지 상반되는 감정이 동시에 발생하는 일이 잦다.
난 조롱당하고 벌을 받아야 하기에 그렇게 안 대해주면 일단 불편하다. 하지만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내 안의 그 아이를 몰라주면 그것 역시 섭섭하다.
이러다보니 내 인간관계는 늘 삐걱거리며 누구와도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는 숙명을 지녔다.
전술한 김 이사에게 나는 말은 안 했지만 조만간 내 안의 그 애를 감지해주리라 기대하고 있다.
그 정도로 내가 사기를 당해줬으면 그 애를 이젠 김 이사가 이뻐해주는 게 당연한 도리라고 여긴다.
그렇지만 99.999프로의 확률도 김 이사는 이 애의 존재 자체를 모를 것이고 나는 이를 이유로 김 이사와 연을 끊게 될 것이다.
날 벌주고 벗겨먹는 건 괜찮다.
하도 당해서 오히려 정겨울 정도다.
다만,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고 그 오랜 세월 혼자서 추워하기만 한 그 애는 어쩌면 좋나.
이상의 이유로 정상적인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한 자들은 멀리하는 게 최선이다.
일단 만들어진 괴물에겐 그 어떤 논리도 안 통한다.
너무 슬프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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