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면의 감촉과 가짜 사랑
순면의 감촉과 가짜 사랑:
#결혼식 준비로 인해 회사 일을 등한히 하는 직원들을 노무사로서 종종 접한다.
이런 경우까지 징계하려는 사장은 극히 드물지만 사내질서유지 차원에서 약간의 훈계는 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유난을 떨며 결혼을 했으면 누구보다 잘 살아야 하거늘, 이상하게 금방 헤어지거나 죽어도 같이 못 살겠다는 말이 흔하게들 나온다.
반대로 "저 직원 결혼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결혼식 준비한 커플들은 대단히 잘 살곤 한다.
진짜 사랑과 가짜 사랑을 구분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결혼식을 목적과 수단 중 무엇으로 보는지 확인하는 것이란 견해가 있다.
진짜 사랑은 결혼식을 오래오래 같이 행복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보기에 그닥 여기 목숨 안 걸고 약소해도 괜찮다고 여기나, 가짜 사랑은 결혼식 자체를 통한 과시를 중시하기에 무리를 해서라도 결혼식 준비를 하고 결혼식 이후의 생활에 대해서는 그닥 고민하지 않았기에 여차하면 헤어진다는 것이다.
난 여름이면 반바지에 나시티 그리고 팬티 이렇게 세 개만 입고 지내는 경우가 잦다.
집에선 보통 이러고 살고 동네 다닐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순면으로 만든 반바지나 나시티와 그렇지 않은 소재로 만든 그것들은 감촉 면에서 무지 많은 차이가 느껴진다.
아무리 좋은 섬유들이 많이 개발되었다고 해도 나에겐 순면이 가장 시원하고 포근하다.
면에 이것저것 합성섬유를 섞은 뒤 순면보다 더 우수하다고 자랑하는 옷들도 입어 보았지만 순면을 능가하는 건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사랑 사랑 지겨울만치 많이들 떠들지만 진짜 사랑은 절대 가짜 사랑이 대신할 수 없다.
아무리 진짜인 양 티를 내도 순면을 합성섬유가 못 따라오듯 그 차이를 아는 자는 반드시 알아챈다.
난 이런저런 이유로 결혼을 못 해보았지만 그래선지 진짜 사랑의 정체에 대한 고민은 누구보다 많이 해 봤다.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원하며 같이만 있을 수 있다면 뭐라도 포기하려는 마음 자세가 진짜 사랑의 핵심 아닐까.
이에 대한 반론도 물론 있겠지만 전술한 대로 결혼식 자체보다 그 후의 삶을 중시하는 커플이 훨씬 더 잘 산다는 사실이 그 증거 같다.
결혼 한 번 못 해보고 죽을 팔자이기에 난 죽는 그날까지 순면만 입을 거라고 말한다면 이해할 사람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