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꿔달라는 부탁에 대한 대처법(빚에 대한 내 생각)
#회수 가능성을 제일 중시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본데 난 좀 다르다.
꿔달라는 상대를 내가 좋아하는지 아닌지를 최우선 순위로 둔다.
좋아하는 상대라면 내가 망하지 않을 만큼의 돈은 얼마든지 빌려준다.
차용증도 안 받고 속으로는 아예 버리는 돈 취급을 한다.
(여담이지만 차용증 받아도 나중에 상대가 작정하고 배 째라고 나오면 받아내기 무지 힘들다. 소송이 유일한 방법인데 시간, 돈이 적지 않게 들며 이겨도 상대가 무일푼이면 방법 없다. 차용증에 돈의 사용처를 명시하게 하면 이 용도에 사용하지 않았을 경우 사기로 쉽게 처벌이 가능하다는 견해도 있으나 아무리 처벌한다고 해도 안 갚으면 더 이상 해법은 없다)
참고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모든 걸 거는 사람이다.
잘나지 않아도 좋다. 핵심은 얼마나 특정 사안에 모든 걸 올인 했는지 여부이다.
의대 간다고 10수를 한 친구가 있다. 군대 다녀와서도 계속했으나 결국 필요한 점수를 못 받아 실패했고 의대가 아닌 이상 다른 학과는 의미 없다며 아예 대학진학을 포기했다. 이 과정에서 부모, 형제와 완전히 원수가 되었고 성격도 꽤나 나빠졌다. 나이 30이 넘어 공장에서 블루칼라 일을 하다 돈을 좀 모은 뒤, 중개사 사무소를 차렸지만 요즘 부동산 경기가 안 좋아 갤갤하는 눈치다. 병원비를 빌려달라는 연락이 얼마 전 왔고 난 아무 말 없이 송금해 줬다.
혼자 애를 키우는 지인이 있다. 본인 애가 아니다. 애 딸린 여자랑 결혼했는데 이 여자가 원래 가진 지병이 도져 죽은 뒤 이 애를 맡아서 키우고 있는 것이다. 이 여자가 그토록 몸이 안 좋다는 걸 이미 결혼 전에 알았단다. 하지만 너무 사랑했기에 결혼을 했고 이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들과 절연까지 한다. 자기 애도 아니라 소홀히 할 만도 하나 전혀 그런 내색 안 보인다. 이 애를 볼 때마다 죽은 아내가 떠오르기에 저절로 잘 하게 된다는 이 지인 역시 생각만큼 일이 안 풀리면 종종 나에게 손을 벌리고 나는 늘 빌려주곤 한다.
이렇게 모든 걸 걸었던 자들이 아니라 그냥 제도권 내에서 눈치만 보며 살았던 대다수에겐 절대 안 꿔준다.
냉혹하다고 볼 수도 있으나 천재지변 같은 아주 특별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한, 빚 없는 삶 역시 얼마든지 평소의 의지에 의해 가능하다고 보기에 그렇다.
난 태어나서 개인에게 돈을 빌린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용돈 주는 사람이 없어서 버려진 병을 주워 슈퍼에 팔며 잔돈푼을 벌던 어린 시절에도 절대 남에게 손은 안 벌렸다.
성인이 된 후에도 이 습관은 여전했고 요양원에서 나와 정말 돈이 없을 때는 노숙마저 했지만 이때도 빚은 지지 않았다.
최초로 내가 돈을 빌린 건 노무사 막 되고 은행에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면서이다.
이것도 하도 은행이 만들라는 성화를 부리며 내가 사는 동네까지 은행원이 직접 나와 함박스테이크까지 사주기에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하지만 거의 쓰질 않았기에 매년 갱신할 때마다 이러시면 저희가 큰 손해라는 은행 측의 푸념을 듣곤 했다.
유일한 빚이 이거였는데 여전히 안 쓴 채 방치만 했고 계약기간 다 끝나며 자연히 사라지면서 내 채무는 제로가 된다.
요즘처럼 날씨 좋은 날엔 저녁 퇴근길에 바로 집에 들어오기 싫기도 하다.
어디 가서 맛나는 밥을 먹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지만 실천하는 경우는 거의 로또이다.
냉장고엔 반찬이 있고 밥통엔 밥이 있으니 그걸 먹으면 괜한 낭비를 막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1년에 2~3번 정도만 전술한 욕구에 따르곤 한다.
매사 이런 식으로 살다 보니 저절로 돈이 통장에 모이고 주변 사람들을 봐도 이런 생활 패턴 가진 자는 아무리 수입이 적어도 거의 빚을 안 진다.
반면 걸핏하면 맛집에 가고 핸드폰을 바꾸는 등 즐기는 삶에 몸이 익으면 아무리 잘 벌어도 늘 채무에 시달리고 여차하면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도 종종 목도한다.
가정이 있으면 절약을 할 듯하나 꼭 그렇지도 않다.
부모들 정신상태가 썩어 빠지면 애들도 낭비를 일삼고 결국 온 가족이 쓰레기로 전락하는 케이스도 흔한 것 같다.
지금 당장 솟아나는 커피에 대한 욕구조차 억누르지 못하는 자들이 빚까지 져가며 코인, 주식, 부동산을 하는 게 과연 합당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