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speech)과 글(writing) 중 뭐가 더 쎌까?
누구나 쉽게 사용 가능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쏘아붙일 수 있기에 보통은 #말의 위력이 더 크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레벨 높은 싸움에선 글이 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법적인 다툼에서 사용되는 각종 서면이 좋은 예이다.
난 말싸움은 다소 약하다.
구순구개열 탓인지 초등학교 3학년이 돼서야 말을 통한 의사표현이 자유로워졌고 그래서 빠른 말싸움은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하지만 글로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겁주는 건 자신 있다.
내가 제출한 제안서를 읽고 전혀 생각지도 않던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는 사장들이나 내가 보낸 문자만 보고 알아서 쭈그러드는 악인들이 꽤나 되는 걸 보면 이쪽으로 재능이 있는 듯하고 책을 두 권이나 출간한 걸 봐도 그렇다.
이런 내 특성이 여지없이 드러난 건 바로 내 누명 사건이다.
경험한 자는 잘 알겠지만 경찰 조사는 말싸움의 성격이 진하다. 반면 검찰, 법원으로 갈수록 주로 서면으로 싸운다.
경찰 조사에선 솔직히 많이 밀렸다.
밥만 먹고 피의자(가해자) 쪼이기만 연구하는 사람들이 경찰이라 그런지 내 주장을 제대로 못 펴다가 조사가 끝나버렸다.
하지만 검찰에선 결국 내가 직접 써서 제출한 의견서 덕에 무혐의가 나왔고 이 경험은 글의 위력이나 내 특성을 새삼 확인하게 해주었다.
고대 그리스의 웅변가 테모스테네스는 원래는 말더듬이였지만 입에 자갈을 넣고 해변가에서 고함을 지르는 연습을 통해 달변가가 되었다고 한다.
전술한 구순구개열로 인한 단점을 극복하고자 강의시장에 일부러 뛰어든 나는 이 정도는 아니지만 전면 거울 앞에서 천 시간이 넘게 강의연습을 했고 이러다 보니 말빨도 이젠 평균에 도달한 것 같다.
내 인생에 별 영향 안 주는 말싸움은 귀찮아서라도 엔간하면 져주곤 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때는 죽을힘을 다해 말싸움에도 임하며 전술한 누명 사건에서 어떻게든 날 엮으려 경찰이 무리한 답변을 요구할 때도 이랬다.
계속 어버버만 반복하던 내가 갑자기 조리 있고 강하게 자기주장을 하자 타이핑을 하던 형사는 대단히 당황했고 결국 이 이슈에선 내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내가 고소한 사건의 피해자진술조사에서도 내 의견에 반박하는 경찰에게 최대한 법리에 근거하여 견해를 펴자 종국엔 내 의견대로 범죄사실을 인정하고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였다.
작정하고 말싸움에 임하면 가슴이 아릴 정도로 아픈 말만 하기에 정말 무섭다는 말을 자주 들으며 전신거울 보며 했던 연습의 영향도 컸던 것 같다.
프리랜서, 자영업, 월급쟁이 그 무엇을 하더라도 말과 글에 능란한 자가 결국 이긴다.
하지만 이를 절실히 깨닫고 연구하는 자는 왜 이리 안 보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