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포근하지만 다시는 참석하면 안 되는 파티
"젊어선 귀신을 마음대로 부리는 게 너무 신기하고 재밌지. 하지만 나이가 들어 쇠약해지면 어느새 그 귀신이 분명히 널 잡아먹으려 들 거야. 귀신은 불러오기보다 언제 어떻게 효과적으로 쫓아낼 수 있느냐가 천만 배는 더 중요해"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날이다.
매년 12월 31일 밤 12시간 되면 나는 의무적으로 어떤 #파티에 참석해야한다.
참석자는 달랑 나 혼자며 장소는 내 집이다.
준비물은 단촐하다.
양초 한 자루, 장미 한 송이, 초코파이 한 개.
어둠 속에서 양초에만 불을 밝히고 바로 옆에 장미꽃을 담은 글라스를 놓아둔 채, 초코파이를 아주 천천히 음미하며 파티는 진행된다.
촛불을 응시하고 있으면 내가 경험했던 수십 년 동안의 일들이 생생히 떠오른다.
날 버린 사람들, 내가 떠난 사람들 모습도 보이고 내가 원했지만 얻지 못한 것들, 내가 흘렸던 눈물 역시 노란 불빛 속에 되살아난다.
너무 힘들면 잠시나마 장미꽃를 보고 초코파이를 핥으며 다시 응시할 힘을 낸다.
이러면서 시간이 흐르다 보면 슬슬 내 상상 속의 친구들, 아니 날 숙주로 삼고 살아가는 귀신들이 찾아온다.
이 파티는 아주 오래 전 요양원에 있을 때 처음 시작되었다.
움직이지도 않는 몸뚱이에 좌절한 상태에서 세상에 완전히 홀로 버려져 비관적 생각만 하던 나에게 어느 날, 양초 한 자루가 우연히 주어진다.
아무 쓸모가 없기에 버리려다가 12월 31일 밤이 되어 같은 방 환자들이 모두 잠들었을 때, 왠지 촛불을 바라보고 싶어서 켰다.
찬바람이 숭숭 불어오던 추운 병실에서 나는 이 촛불을 보며 상상속의 친구들을 마구 이 파티에 초대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혼자 시간을 많이 보내며 공상 속 친구들과 노는 습관을 가졌고 이는 성인이 되고도 계속된다.
이들은 현실의 아이들과는 달리 나를 언청이나 장님이라고 놀리지 않았고 늘 포근했다.
어릴 때 만났던, 아니 나를 노리던 어떤 박수무당이 그랬다.
귀신을 마음대로 부린다며 한껏 자랑을 하던 그는 나에게도 그런 기질이 있기에 상속 속의 친구들과 그토록 오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 했다.
그들의 본질은 귀신이고 내 안에 머물고 싶어 하기에 내가 자신들을 상상하도록 나를 부추겼을 거라고도 했다.
귀신인지 아니면 단순히 공상의 존재인지는 중요치 않다.
그들 덕에 나는 어릴 때의 외로움을 이길 수 있었고 요양원 시절의 암담함도 극복할 수 있었다.
전술한 첫 파티 이후 나는 매년 말일이 되면 항상 이 파티를 열었다.
나에게 또 다른 한 해를 살 수 있는 의지를 주고 이때 찾아온 친구(귀신)들은 다시금 1년 동안 나랑 시간을 보내며 지켜주었다.
원래대로라면 오늘도 이 파티를 열어야 한다.
하지만 이젠 이 파티가 슬슬 꺼려진다.
전술한 박수는 이 글 맨 처음의 말도 하며 나에게 귀신들을 적당히 멀리 하라고도 경고했다.
나의 이성이 대단히 약해지는 순간을 요즘 종종 겪는다.
그냥 나도 모르게 내 안의 완전히 생소한 존재가 터져 나오는 것 같고 다 끝나고 나면 내가 도대체 무슨 말과 행동을 했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나도 이젠 적지 않은 나이를 먹었다,
날 보호해주던 친구 혹은 귀신들을 보내야할 시기가 왔는지도 모른다.
살해된 로마 황제 대부분은 로마의 적인 이민족이 아니라 황제의 바로 옆에서 경호를 해주던 친위대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다.
강제로 보내자니 솔직히 아쉬움도 크지만 이들로 인해 내가 미래로 나아가지 못 하고 과거에만 잡혀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오늘의 나를 만든 최고의 수훈갑을 이젠 냉혹하게 내치자니 너무 힘들다.
이따 저녁이 되었을 때 술을 잔뜩 먹고 잠들어 버리면 밤새 꿈나라로 도망갈 수 있을 테니 이 파티에 참가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내 유일한 낙마저 스스로 허물어뜨리고 현실에 더욱 다가서려는 내 선택을 과연 내가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현실의 내 옆에는 아무도 없는데.
진짜 하나도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