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자살,구타,안경

내가 수십 번도 더 죽인 그 아이와 진짜 메리 크리스마스

강명주 노무사 2022. 12. 21. 13:13
 

내 마음 속 그 아이를 수십 번도 더 죽였다.

방법 또한 극악무도했다.

칼로 심장을 찌르거나 목을 따버리거나 내 두 손으로 목을 조르거나 온 몸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붙여 버리거나 강제로 독약을 먹이는 등 영화에서나 볼법한 잔인한 방법은 다 동원했다.

이와 관련된 상상을 하거나 꿈을 꾸고 나면 너무 괴로웠다.

아무리 현실이 아닌 가상이라지만 정상인은 조금도 안 할 이런 생각을 자꾸 하는 나 자신이 너무 역겹고 이상했다.

의도적으로 무시하려해도 이들 생각은 늘 따라다녔기에 이러다 미치는 게 아닐까 아주 큰 걱정이 들었다.

올해 여름 자문사에서 큰 소동이 있었다.

자상하다고 소문난 모 상사가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 욕설, 저주, 성희롱성 발언을 일삼았다고 갓 들어온 부하직원으로부터 신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해당 상사는 업무상 실수를 이유로 가벼운 질책은 했지만 문제의 발언들은 전혀 없었다고 강력히 부인했고 이 부하직원 외에는 피해자가 없었기에 그냥 이대로 묻힐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부하직원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목에 차는 사원증 뒷면에 소형 녹음기를 붙여놨다가 문제의 순간마다 이를 눌러서 녹음을 해놨고 징계위원회에서 다시금 이 상사가 공개적으로 부인을 하자 모두들 앞에서 이 파일을 재생해버렸다.

상사의 얼굴색은 즉각 흙빛으로 변했고 이런 면모가 있을 줄 전혀 몰랐던 사장 이하 동료들 또한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 ​ ​

파일내용은 신고한 그대로였고 협박조의 말도 분명히 있었기에 공연성 충족여부와 무관하게 이 부하직원은 형사고소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해당 상사의 과거 행적을 조사해본 결과, 막 들어온 신입사원들에게서 유사한 클레임이 몇 건 더 접수되었지만 당시엔 증거가 없었기에 유야무야 처리되었고 이들 신입들은 이에 좌절하여 다들 자진사퇴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 상사의 진짜 면모를 본 건 그에 대한 징계해고가 결정되는 자리에서였다.

너무 사안이 중대하기에 직원 모두에게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는 차원에서 사장은 권고사직이 아닌 징계해고를 선택했고 이를 통보하는 자리에 상사를 불렀는데, 그는 전혀 뉘우치는 기색 없이, 평소 만만한 신입사원들 상대로 이렇게 스트레스를 푼 게 그토록 잘못이냐는 발언을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하고 만 것이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쩜 저리 이중인격적 모습을 보이는지 너무나 놀라웠다.

전술한 살인의 상상을 내가 반복한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어릴 때부터 그들에게서 지속적으로 극렬한 폭행을 당했기에 나도 모르게 마음 가득 분노가 차올랐고 이것이 나보다 약해서 반항할 수 없는 상상 속 아이를 상대로 최고로 잔인하게 표출된 것이다.

이를 나는 아주 아주 많은 나이를 먹은 뒤에서 깨달았다.

그전까진 내가 혹시 악마라 이런 상상을 하나 걱정이 많았지만 내가 아닌 나를 때린 자들이 악마였고 나는 단지 피해자로서 어쩔 수 없이 마음까지 다치며 이렇게 된 것으로 해석되었다. ​

이와 같은 결론을 도출하고 나자 신기하게 나를 괴롭히던 생각들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아주 안 나는 건 아니지만 이젠 대단히 드물게 떠오르며 그때마다 왜 이런 생각이 나타나는지 다시금 그 이유를 스스로에게 설명하면 금방 사라지곤 한다.

세상에 악마는 존재한다.

전술한 상사나 나를 때렸던 자들이 그 전형이다.

이들 역시 대부분은 과거에 누군가로부터 받은 상처 탓에 이렇게 되었겠지만, 악이 몸과 마음 전체에 퍼지는 걸 막을 수 있는 기회는 거의 다에게 있었다.

단지, 악한 천성 혹은 자포자기하는 심정 탓에 브레이크를 걸지 않고 악이 이끄는 대로 생활하다가 악마 그자체로 변해버린 것이다. 스타워즈에 나오는 다스베이더를 생각하면 된다.

일단 이렇게 변한 자들은 절대 갱생이 불가능하다.

전술한 상사 역시 자신의 행위를 어떻게든 옹호하려만 들었고 나를 때린 그들 또한 현재 겪는 고통을 구구절절 설명하며 사과 한마디만 하라는 내 요구에 끝까지 오리발만 내밀었다.

이들에 대한 최고의 대응책은 처벌과 무시이다.

형사처벌이나 해고가 가능하다면 전술한 부하직원처럼 최대한 강하게 나가야 한다.

이는 피해자의 아픈 마음을 달래는 데도 최고의 치료약이기에 일체의 동정을 보이면 안 된다.

만약 나처럼 공소시효나 소멸시효가 경과했다면 무시가 차선책이다.

전술한 대로 갱생이 불가능한 악마들이기에 그저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만이 상처를 치유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며 가능하면 최대한 멀리 떨어져 사는 게 좋다.

혹시 들키지 않거나 합법적인 복수가 가능하면 이게 더 좋을 지도 모르나 여차하며 이를 기화로 고소를 하는 등 오히려 덤탱이를 씌울 수도 있기에 나는 가급적이며 ‘무시’를 추천한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예년과 달리 마음이 편할 것 같다.

내 안의 그 아이를 전처럼 가혹하게 고문하거나 죽이지 않고 올해부턴 아주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기에 이런 기대가 된다.

나에겐 올해부터가 진짜 메리 크리스마스라 생각된다.

이를 기뻐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