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우울증,정신건강

허무함 탓에 큰 돈벌이 이렇게 발로 차고 그러면 안 되는데

강명주 노무사 2022. 12. 2. 20:11

#냉전 시절, 미국, 소련 등 주요 국가는 스파이들을 대거 키웠고 이들은 상대국의 비밀을 캐기 위해 목숨까지 건 위험을 무릅썼다. ​

이 스파이들 대다수의 은퇴 후 삶은 매우 불행했다.

상당한 연금액이 주어졌기에 경제적으로는 문제가 없었지만 가족, 친구, 지역사회 그 어디에도 적응하지 못하다가 결국 술과 마약에 빠져 인생을 날려먹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 원인을 분석한 논문을 보면 다음 같은 해석이 나온다.

스파이 생활을 하며 지나친 긴장과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었기에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만끽하는 감수성이 상당 부분 쇠퇴했고 그래서 은퇴 후의 정상적인 삶에 도저히 적응할 수 없었다고 한다.

오늘 오전에 병원에 갔었다.

내 인생을 완전히 뒤집을 만한 병에 걸렸는지 검사하기 위함이다.

검사를 받고 약 30분간 병원 로비에서 기다렸다.

그 동안 내 머릿속에는 별별 생각이 다 지나갔다.

그 병이 아니라고 한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 병이 맞다고 한다면 앞으로 어찌 사나.

증상만 보면 90프로 이상 그 병이 걸린 듯한데 치료가 과연 될까.

난 완전 혼자이기에 간병인을 써야 하는데 돈이 꽤나 많이 들겠지.

병원치료와 노무사 일을 병행할 수 있을까.

만약 악화되어 일상생활을 못하게 된다면 내 인생은 이제 어쩌나.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그 추위에도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고 진료실에 들어가 의사 앞에 앉으니 아무 문제없다고 한다.

순간 가벼운 현기증에 나도 모르게 비틀댔고 깜짝 놀란 의사가 부축까지 해준다.

무음으로 해뒀던 핸드폰을 병원을 나서며 그제야 들여다보니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많이 와 있다.

모두 업무와 관련된 것인데 이상하게 그냥 다 귀찮다.

병원 근처의 호수로 나도 모르게 발이 움직였고 잔잔한 물살을 보고 있자니 만사가 다 부질없게 느껴진다.

당장 다음 주 초에 꽤나 중요한 미팅과 강의가 연달아 있기에 1초도 낭비 말고 당장 사무실에 가서 준비를 해야 하건만 왜 그래야하는지 자꾸 의문만 든다.

좀 전에 의사가 그 병에 걸렸다고 했다면 업무 다 무시하고 간병에만 신경 쓰고 있었을 거란 생각을 하자 더더욱 그렇다.

주선해준 사람에게 연락을 하여 말했다.

개인적 사정으로 캔슬하겠다고.

이제와 그게 말이나 되냐며 펄펄 뛰었지만 맥주나 마시며 영원히 저 물결만 바라보고 싶었다.

어려서부터 몸이 안 좋다보니 오늘의 병원에서와 같은 경험을 자주했다.

그리고 실제로 몸에 큰 장애가 와서 10여년을 요양원에서 허송세월하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 만나 결혼하고 아이 낳고 가정을 꾸려나가며 돈도 많이 벌면서 인생을 즐기는 것.

다수가 원하는 이게 나에겐 솔직히 거의 의미가 없다.

전술한 은퇴한 스파이들의 심정이 이런 걸까.

너무 큰 난관을 인생에서 자주 만나도 사람 자체를 버린다는 속설이 생각난다.

평범해도 건강히 태어나 평균적인 삶을 누릴 수 있었다면 내가 이렇진 않을 텐데....

가급적 만사를 긍정적으로 보려다가도 오늘 같은 경험을 자꾸 하니 마음이 참 그렇다.

이 모든 건 절대 내 탓이 아니건만 왜 자꾸 자책만 하는 건지 자책하는 내가 참 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