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언청이 연쇄살인마가 될 기회를 놓친 사연
세계 최초의 언청이 연쇄살인마가 안 될 수 있었던 요인:
연쇄살인마 관련 영상이나 책들을 보다보면 이들에겐 아주 많은 공통점이 있고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아주 어릴 때부터 사랑은커녕 인간으로서 도저히 견디기 힘든 가혹한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다.
- 낮은 지능, 말더듬이, 왜소한 체격 등 신체적 결함을 가지고 태어나 놀림이나 차별을 많이 받았다.
- 홀로 버려진 시간이 많았다. 누구도 이들을 챙겨주지 않았다.
- 처음엔 강아지나 고양이 등 작은 동물을 괴롭히거나 죽임으로써 살인의 쾌감을 알게 된다.
- 남자 연쇄살인마들의 경우, 여성들에게 잦은 거부를 당했다. 이는 성적인 욕구불만으로 이어져 더더욱 잔인성이 커진다.
나 같은 경우, 언청이(구순구개열)를 가지고 태어났고 초고도 근시임에도 아주 오랜 세월 안경 없이 생활을 해야 했기에 유년기부터 성격이 꽤나 왜곡되었다.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이라도 마찬가지 위치였다면 동일한 결과가 나왔을 거라 보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안경을 끼고 있는 상태에서 안경이 박살나도록 발로 차이는 등 잦은 폭력도 감수해야 했기에 비정상적인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게다가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려 했으나 결국 언청이의 유전성 탓에 2번이나 혼례 직전에 파혼을 당하고 나니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생각들이 내 머리통 전체를 지배한 적도 있다.
이러면서 나를 때리거나 거부한 사람 나아가 그냥 아무 상관없는 인간일지라도 한 명이라도 더 그리고 최대한 잔인하게 죽여 버릴 수만 있다면 기분이 무지하게 좋아질 것 같다는 느낌에 강하게 사로잡힌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우연히 길에서 주운 작은 거북이를 뜨거운 물에 넣어 죽인 게 내 첫 번째 살인(?)이었다.
그 후 비슷한 동물학대를 계속하다가 결국 인간에게도 손을 댔다고 고백한다면 이 글을 읽는 걸 그만두고 당장 경찰에 날 신고하려는 자들이 많겠지만 이런 오지랖만 넓은 개새끼들 엿먹이고 싶다는 욕구도 강했기에 거북이 이후엔 그 어떤 생명도 해친 적이 없다.
살인마가 되기는커녕 지극히 정상적인 제도권내 인물이 된 오늘날, 그 요인들을 나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눈물
무지 많이 울었다. 남자는 우는 게 아니란 말이 사회에 통용되지만 내 당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우는 것 뿐이었다. 하루하루 나빠져만 가는 눈이 하도 걱정되어, 내리는 빗물이 눈에 들어가도록 하늘을 계속 쳐다보며 이 빗물이 기적을 발생시켜 제발 시력이 좋아지길 바란 적도 있었지만 당근 아무 효과가 없었고 나는 더 울었다. 우는 소리 짜증난다는 주위 사람들의 반응에 한겨울에도 산에 울려고 들어가던 게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혼자 자취할 때는 옆방사람들에게 피해를 안 주기 위해 이불을 뒤집어쓰고 밤새 울기도 했다. 독거노인의 이런 고백이 그저 궁상맞아 보이겠지만 덕분에 내 분노가 상당수 발산된 게 사실이다.
- 유머
2번 째 파혼을 통보받던 자리에서 최초로 든 생각은 저 여자의 하얗고 가는 목을 내 손으로 졸라서 죽인다면 얼마나 손 맛이 좋을까 였다. 하지만 그녀의 풍성한 모발위에 자리 잡고 있던 우연히 떨어진 낙엽과 이를 모른 채 잔뜩 분위기 잡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묘한 시녀지 효과를 내고 있는 게 보이자 분노는 당장 사라지고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몸이 안 좋던 시절, 부당한 해고를 통보받던 자리에서도 이를 통보하던 너무 짧은 넥타이를 맨 사장이 찰리 채플린을 연상시켜서 폭소부터 터뜨렸다. 천성적으로 유머감각이 대단히 좋거나 아니면 스스로도 콘트롤 못한 분노에 휩싸일 때면 어떻게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하여 일부러라도 웃긴 생각을 하는 게 몸에 봬서인 듯하다. 3~4살 때로 기억되는데 아주 추운 겨울에 혼자 산에 가서 차가운 돌덩이들을 가져다가 내 주위에 나열해놓고 이 돌들을 내 가족이라 여기고 대화까지 하며 혼자 놀았던 기억은 죽을 때까지 안 잊힐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꽤나 슬펐을 것 같지만 당시 난 진짜 즐거웠다. 이때부터 유머라는 방어막을 스스로 개발했나 보다.
- 공감능력
대학시절, 학생과외를 많이 했다. 성적이 오르면 잘해주고 안 오르면 노예처럼 괴롭히기만 했는데 이런 스파르타식 방법이 효과가 있었는지 날 찾는 학부모들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성적인 안 오른 아이에게 냉혹한 체벌을 하는데 아주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기분의 정체가 뭔지 괘나 많은 날들을 고민해보니 내가 어려서 구타를 당할 때의 바로 그 기분이었다. 어떤 심리학자는 말했다. 사람을 때릴 때도 맞을 때와 유사한 기분이 들고 그래서 고문을 업으로 하는 자들은 결국 본인도 나중에 크게 몸이 상한다고. 이를 깨닫고 나자 나는 바로 모든 과외를 그만뒀다. 때리지 않고 성적을 올려주는 건 너무 힘들고 누굴 때릴 때의 기분은 내가 맞을 때를 그대로 연상시키기에 도저히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이후, 내 안의 공감능력의 존재를 강하게 인식하며, 누굴 때릴 때도 이토록 괴로운데 만약 죽이기라도 한다면 나는 절대 이를 견디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저절로 살인은 피하게 되었다.
- 자존감
누굴 죽인다면 아무리 그 사유가 정당해도 세상은 살인범이라며 손가락질 하는 게 보통이다. 연쇄살인마 중 동정을 받은 자는 단 한 명도 본적이 없다. 무등산 타잔으로 알려진 박흥숙은 그 살인에 있어 동정의 여지가 있지만 1명도 아니고 4명을 죽여서인지 오늘날에도 그닥 옹호하는 견해는 안 보인다. 내 자존심은 살인자에 대한 비난과 손가락질을 감수하기엔 너무 높았다. 게다가 안 보이는 눈을 가지고도 고려대에 가고 의료사고로 청춘을 다 날리고도 결국 노무사가 됨에 따라 내 자존감은 저절로 높아졌으며 이런 상태에서 왜 굳이 살인까지 하여 스스로를 몰락시켜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든다. 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내 구순구개열과 초고도근시를 죽는 날까지 저주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살인으로 이 분노를 해소하기엔 내가 너무 아깝다. 계륵이라 볼 수도 있지만 혼인시장에서도 거부된 독거노인일망정 노무사이자 행정사로 일하는 나로 인해 삶이 대단히 긍정적으로 바뀌는 근로자나 외국인들을 접할 때면 난 살아도 될 만한 사람이란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누굴 죽여서까지 해소해야할 분노가 이젠 내 안에 없다.
이런 이유들로 난 세계 최초의 언청이 살인마가 될 수 있었던 너무 아까운 기회(?)를 놓쳤다.
단 한 명이라도 죽였다고 고백했다면 당장 신고해서 갖은 오지랖 부릴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아쉽냐?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