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를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도대체 어쩌라고?
"이거 받아요"
"뭐죠?"
"열무김치 내가 담근 건데 소주랑 라면 먹을 때 함께 드세요. 입에 맞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이건 얼마 안 되지만 하고픈 거 할 때 보태세요"
내가 그토록 꿈꾸던 복수를 실행 했던 사람이 얼마 전 출소했다.
이 복수의 결과, 이 사람은 7년형을 받았고 가석방 없이 전부다 채워야만 했다.
얼마 전 나왔다는 걸 오늘에야 들었고 무섭게 퍼붓는 비를 뚫고 찾아갔다.
아주 오래 전 노가다를 하다 알게 된 그는 나와 거의 동일한 한恨을 가졌기에 금방 친해진다.
복수를 할 거냐고 그가 묻기에 내 성에 차려면 형법을 위반할 수밖에 없고 그 인간들 탓에 전과자까진 되고 싶지 않다는 답을 했다.
자신은 그런 거 생각 안 하고 더 참다간 스스로를 파괴할 것 같다는 답을 하더니 진짜 며칠 뒤 복수를 단행한다.
구속된 그를 찾아가 후회하지 않느냐고 묻자 이제야 잠을 편히 잘 수 있게 되었다며 만면에 미소를 보였다.
하지만 7년이란 세월은 너무 길었나보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진 몰라도 반백인 나보다도 흰머리가 많아졌고 늘 유쾌하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다.
날 만나자 마자 담배를 꺼내더니 한 대 권한다.
끊은 지 8년이라고 하자 그 동안 자신은 감옥살이 밖에 못 했는데 많은 발전을 한 듯하여 부럽단다.
복수를 원하는 마음은 다 사라졌냐고 묻기에 일단 그들을 직접 보면 나 역시 당신 같은 행동을 할 수밖에 없을 텐데 교도소는 너무 무섭기에 못하고 있다는 답을 했다.
그게 진짜 복수라는 말을 갑자기 한다.
그런 쓰레기들을 맞상대하다가 소중한 인생 상당부분을 감옥에서 보내는 것만큼 바보짓은 없다는 말도 덧붙인다.
이 사람 스탠스는 이게 아니었는데.
복수 못하고 있는 스스로가 너무 싫어서 죽음까지 생각하는 내가 당신을 얼마나 존경하고 부러워하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다 부질없다며 미리 따라둔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킨다.
나에게도 따라 주기에 그냥 무작정 받아마셨다.
언젠가 진짜 힘들면 나도 꼭 결행하리라 다짐하는 복수를 이미 했던 선배가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언제가 될지 몰라도 그 복수를 나도 할 거란 기대에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데.
일자리를 소개해주면 고맙겠지만 흉악범이라 힘들지 않겠냐며 침묵을 깬다.
이번엔 내 손으로 막걸리를 따라 마시며, 당신 말대로 복수 안 하고 교도소 밖에서 8년을 보낸 게 진짜 의미 있는 행동이었다면 그 정도 부탁은 들어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히스테리성 웃음이 섞인 답을 했다.
많이 취한 것 같으니 가달란다.
이건 정말 아닌데.
상대방 특유의 스탠스를 따라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영 어색하다.
술 먹고 깽판 치는 건 이 사람 역할이고 그걸 달래다가 내쫓는 게 내 역할인데....
준비해 간 열무김치와 약간의 돈을 남기고 이 사람의 반지하 월세방을 나서는 내 얼굴을 빗방울이 때린다.
복수를 결행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도대체 어쩌라는 걸까?
너무 화가 나서 빗물이 고인 구덩이를 발로 차니 지나가던 아가씨가 노려본다.
고소해라!!!!
어차피 막 가는 인생, 후회로 가득한 인생이다.
영웅의 몰락을 보면 이런 기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