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뚱이 안에 들어와 있는 악귀들과의 피치 못할 동거
내가 마지막 본 그의 모습은 처참 그 자체였다.
#요양원 뒷산 나무에 혁대로 목을 매고 자살한 그의 얼굴은 눈과 혀가 괴기할 정도로 튀어나온 게 악귀의 전형이었고 악취 또한 대단했다.
자살을 하는 즉시 괄약근과 방광이 열리며 나온다는 대소변이 원인 같았다.
나보다 나이가 약간 많던 그는 늘 희망적인 말만 하고 살았다.
몸이 당장은 안 좋을지 몰라도 언젠가는 좋아질 것이며 그러면 우리에게도 밝은 미래, 따뜻한 가정, 풍요로운 일상사가 도래할 거라며 꿈을 잃지 말고 살자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당시 몸을 못 가누던 나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하기에 개소리 하지 말라며 화를 낸 기억이 생생하다.
어설픈 희망은 차디찬 현실보다도 더 아프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그랬다.
하지만 그는 이런 반응에도 아랑곳 않고 계속 나에게 신경을 써줬고 나중엔 나도 이 사람을 많이 좋아하게 된다.
사업을 하다 망해서 빚이 좀 있고 교통사고로 허리를 제대로 못 가눈다는 걸 제외하면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인 그가 돌변한 건 아내의 방문 이후다.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고 좋은 사람을 만났으니 이혼을 해달라는 부탁을 이 여자는 했다고 한다.
아내의 마음을 돌이키고자 수차례 편지도 보냈지만 차가운 반응만이 돌아왔고 결국 이 남자는 협의이혼에 동의한다.
그 뒤로 이 사람 입에선 더 이상 희망적인 말이 일절 안 나왔고 허리만 좋아지면 아내와 새 남편을 죽이러 가겠다며 어디선 구했는지 시퍼런 식칼을 날마다 꺼내보곤 했다.
난 이 사람을 말렸다.
마음이 떠난 여자에게 연연하는 것만큼 바보짓도 없으니 그냥 팔자를 받아들이라고 했다.
당시 내 몸을 마비시켰던 사고 이전에, 이미 구순구개열(언청이) 탓에 이 남자와 비슷한 이별을 경험했었기에 나온 말이지만 그는 한 귀로 흘리며 완전 무시만 했다.
그러다 정기 검진에서 이 남자에게 암마저 발생했다는 게 발견한다.
걸핏하면 독한 소주를 안주 없이 먹고, 식사 때도 늘 입맛이 없다며 무지 짜고 맵게 먹던 습관 탓인지 위암이란다.
복수를 못 하면 도저히 눈을 감을 수 없다는 영화에나 나올법한 말을 하는 그의 태도는 암의 진행마저 가속화시킨 듯했다.
병원에서조차 놀라 정도로 그의 상황은 빠르게 악화된다.
이런 그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날 찾아온 건 이 즈음이다.
당시 나는 미친척하고 매일 하던 운동 덕인지 차차 몸의 마비가 풀리고 있었는데 이런 나에게 자신에겐 사실상 불가능해진 복수를 대신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아내와 새 남편을 죽이거나 최소한 장애인으로 만들어달라는 내용이었기에 나는 미친 소리 하지 말고 당장 꺼지라는 말을 했다.
이런 반응을 익히 예상했는지 전혀 당황하지 않던 그는 갑자기 내 앞에 무릎을 꿇더니 품에서 작은 봉투를 꺼냈다.
그 안에는 교통사고 등 복수가 아니라 사고로 보이기에 최대한 가벼운 형을 받을 수 있는 이 사람이 나름 연구해낸 방법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밤에 너무 아파서 잠을 못 이루던 내 이마에 차가운 물수건을 계속 대주며 간호해 주었고 요양원에 내야 할 보증금이 없어서 쫓겨날 뻔한 내 대신 그 돈을 내줬던 기억 등도 상기시키며 이런 점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라도 부탁한다고 했다.
이미 암이 많이 진행되었기에 모르핀 없인 버티기조차 힘든 그의 이런 태도는 날 많이 흔들었다.
일단 예스를 하고 실행을 안 하면 그뿐일 거란 생각에 나는 바보같이 동의하고 만다.
그는 간만에 아주 환한 미소를 보였고 며칠 뒤 자살을 했다.
암으로 인한 고통이 너무 심했고 평소 가졌던 희망과는 180도 다르게 흘러간 현실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나 보다.
나는 장례가 끝나자마자 그에 대해 완전히 망각해버렸다.
대신 해준다던 복수에 대한 대가를 받은 것도 아니기에 전혀 부담이 없었다.
그 후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완전히 마비에서 풀린 나는 사회로 복귀하여 직장도 얻는다.
비록 밑바닥 인생이지만 나름 자립의 기쁨 속에 살던 나에게 그가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금도 생생하다.
노가다를 마치고 그날 받은 일당을 신줏단지처럼 귀중하게 간직한 채 귀가하던 낸 눈이 비친 계단에 앉아있던 그의 모습이.
그때 내가 살던 월세방은 가파른 계단을 아주 많이 올라가야 도달할 수 있었는데 그 중간에 떡하니 그는 자리 잡고 있었다.
처음엔 그날의 일을 마칠 무렵, 마지막 힘을 내기 위해 마신 말거리 탓에 보인 헛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비비며 다시 보아도 시퍼런 얼굴에 터질 듯이 튀어나온 눈망울이 자살 직후 그의 모습과 100프로 일치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공포에 계단에 주저앉다시피 한 나에게 그는 묘한 웃음을 보이며 이리 오라는 식의 손짓을 했다.
복수를 대신 해주겠다는 약속을 어긴 건 사실이기에 그의 앙갚음이 겁이 난 나는 그러지 못 했고 어서 이 순간이 지나가기만 바라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다 잠이 들었나 보다.
지나가던 행인이 이런 곳에서 자면 큰일 난다며 나를 깨웠고 그의 모습은 이미 온 데 간 데 없었다.
이를 당시엔 내 착각이라 여겼다.
돈을 모은다며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지낸 당시 환경 탓이라 생각하고 그냥 무시하려 했다.
그 후 나는 노무사가 되었고 100프로 성에는 안 차도 조금은 내세울 만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러다 책을 내기로 마음먹고 노력하던 중에 하도 글이 안 써져서 한강다리에 간 적이 있다.
압구정역 바로 옆의 동호대교였는데 이 다리는 도보로 횡단이 가능하다.
한 손에 든 소주를 조금씩 마시며 걷고 있는데 또 그가 보인다.
다리 난간 위에 서서 나에게 또 손짓을 했다.
이때는 무섭다기보다는 화가 많이 났다.
도저히 실행하기 힘든 일을 반강제로 떠맡겨 놓고 자꾸 채근하는 그가 밉기만 했다.
나도 모르게 욕을 마구 하며 그 연놈들을 죽인다고 뭐가 바뀌는지 물었던 것 같다.
손에 소주병을 든 사람이 한강다리에서 허공에 대고 떠드는 게 위험해 보였는지 누군가 신고를 했고 얼마 뒤 경찰이 달려와 나를 차에 태워 가까운 지하철역에 내려줬다.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는 말을 못한 게 당시 가장 후회스러웠다.
또 몇 년이 흘렀고 지난달 초에 산에서 그를 재차 봤다.
여느 때처럼 늘 돌던 코스를 걷고 있는데 저 멀리 뭔가가 나무에 매달려 있었고 가까이 가보니 그가 실제 죽던 때 모습 그대로 혀를 내민 채 대롱대롱 댄다.
전술한 두 번의 만남(?)이 없었다면 너무 놀라 진짜로 심장이 멎었을지 모르나 이때는 덤덤한 기분만 들었다.
분노, 무서움, 짜증 등을 모두 초월하여 오죽하면 이럴까 하는 생각에 애잔하기만 했다.
가까이 다가가 그에게 말했다.
자꾸 이렇게 나타나도 나는 그들에게 물리적 위해를 가할 생각 전혀 없으니,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내가 그토록 원망스럽다면 날 해치라고.
그는 날 계속 노려보았고 나는 미소를 보였다.
아주 어릴 때 박수무당이 말한 대로 난 영혼이 없기에 귀신들이 제집 드나들듯 내 몸뚱아릴 이용하고 있고 이 남자도 마찬가지일 거란 생각이 들었기에 자꾸 웃음만 나왔다.
도대체 전생에 얼마나 많은 죄를 지으면 이런 팔자로 태어날까?
이 자리에서 나를 목 졸라 죽이기라도 하라며 그에게 이젠 내가 닦달을 하는 순간, 갑자기 바람이 불며 나뭇잎이 내 눈을 강타했고 그 아픔 탓에 눈을 잠시 감았다 떠보니 그는 또 사라진 상태였다.
어제, 아는 사람이 용한 점쟁이를 만나러 간다며 같이 가잔다.
무료해서 동의했는데 막상 날 보자마자 무당이 그런다.
악귀가 씌웠다고,
그래서 뭘 해도 노력에 비해 성과가 안 나오니 최대한 빨리 굿을 해야 한단다.
날 잡아 먹으려다 물에 빠져 죽어간 박수가 그랬는데.
나보다 자신이 먼저 죽는다면 반드시 내 안에 들어와 살 것이며 그 어떤 굿을 해도 안 나갈 거라고.
이를 이야기하며 그렇기에 굿을 해도 소용없을 거라 하자 무당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그 위에 영혼까지 잡아먹는 놈,
늘 노력과는 달리 안 풀리는 내 인생이 왜 이런지 이유라도 알고 나니 편안함 반, 아쉬움 반.
전술한 자살한 그 남자와 박수무당, 최소한 이 두 명이 내 몸뚱아리 안에 들어와 있음은 분명한데 날 증오하는 이들과의 동거생활을 어찌 꾸려나가야 잘 살았다고 소문이 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