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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비참함은 피하는 게 최선인 까닭

강명주 노무사 2022. 9. 23. 09:07

지나친 비참함의 악영향:

룸싸롱에서 컵돌이(주방에서 설거지하는 일)를 하던 시절, 손님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집에 가져다 먹곤 했다.

날마다 일이 끝날 때면 남아있는 깨끗한 음식들을 한 데 모으고 적당히 1인분씩 알루미늄 호일에 나눈 뒤, 마담의 허락 하에 룸사롱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져가곤 했는데 이를 이용한 것이다.

아무리 깨끗하더라도 누군가 먹으려 했던 것이기에 대다수는 쳐다도 안 봤지만 나처럼 상황이 안 좋은 사람들은 식비 절감차원에서 자주 가져다 먹었다.

이로 인해, 많이 힘들던 그때를 결국 버틸 수 있었지만 마음엔 큰 상처를 남겼다.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하나 라는 당시 느낀 자괴감은 내 성격을 매우 나쁘게 만든다.

지금은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누군가에게 뭔가를 부탁하려 할 때는 이상하게 이 시절이 떠오른다.

현재 부탁하는 일과는 전혀 연관이 없음에도, 어떻게 하면 마담에게 잘 보여서 음식을 좀 더 가져갈까 고민하던 그때의 굴욕감이 다시금 연상되기에 무지 까탈스러워지며 상대의 별 뜻 없는 반응에도 자주 오버해서 대응을 한다.

며칠 전 모 유명 음식점에 지인들과 함께 갔다.

한쪽 구석이 무척이나 시끄럽기에 자세히 보니 어떤 유튜버가 먹방을 찍고 있다.

이 음식점의 여러 메뉴를 거의 다 시켜놓고 카메라 바로 앞에서 마구마구 먹으며 소감을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다.

지인들과 나도 식사를 시작했고 얼마 뒤, 이 유투버의 촬영이 다 끝난 모양이다.

카메라맨 등이 장비를 챙기던데 음식을 다 먹는 게 목적이 아니었는 듯, 상당수 음식이 남아있다. ​ ​ 

의자와 테이블까지 본래 위치로 다 옮긴 스탭들이 남아 있는 음식들 앞에 자리를 잡더니 먹기 시작했다.

방송을 진행하는 유튜버가 이미 한두 번이라도 손을 대었기에 전술한 룸싸롱 음식보다도 깨끗할 리 만무했지만 열심히들 먹어 댄다.

그 중 한 젊은 스탭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너무 꺼림직한지 영 못 먹던데 옆의 상급자로 보이는 사람이 뭐라 하자 얼굴은 찡그리면서도 입에 넣는다.

제작비가 부족하기에 별도의 식사를 제공하기 어려워 이랬는지 아니면 이 바닥에서 일하려면 전체 분위기를 깨지 말아야 하기에 이랬는지는 당사자들만 알 것이다.

다만, 먹기 싫은 걸 먹었기에 발생 가능한 배탈 외에도 이 스탭에겐 자신의 직업과 현재 상황에 대한 큰 회의가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다.

고생은 인간을 강하게 한다고.

하지만 너무 지나친 고생, 특히 정신에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고생은 마음에 상처까지 남기고 이게 잦으면 멘탈이 붕괴되어 정신이 이상해지며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대단히 인성이 뒤틀리는 게 보통이다.

부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적당히 자존감은 유지할 수 있는 가정에서 자란 자들을 회사나 혼인시장이 괜히 환영할까?